1-9. 슬럼프가 오는 이유

by 은행원


나는 퇴사를 이야기 한 후 내 주변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에 가끔씩 연락해오던 동기들부터 함께 일하는 동료들까지. 나를 아끼는 마음들을 느끼며 내 선택에 대해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퇴근 후 동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결정한거야? 주말 동안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언니, 나는 마음을 정한 것 같아.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니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너무 열심히 달려서 더 그런가봐. 너 입행하고 처음에 백명 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었잖아’


내가 그런 적이 있었지. 잊고 있던 사실을 언니를 통해 상기시켰다.


사회초년생의 나는 열정이 넘쳤다. 기본적으로 맡은 일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처리하는 편인데 첫 직장이었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을 회사에 쏱았다. 그리고 성과도 좋았다.


전국 카드 실적 상위자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두 번, 제주도 연수를 한번 갔었고,

상사와 팀이 되어 활동일지를 기록하여 100만원의 포상을 받기도 하고,

근무시간 외의 시간을 활용하여 연수를 들으면서 은행에서 성장할 꿈을 키웠다.


언니가 말했던 그 때 그 자리도 기억이 난다. 마이크를 끼고 백 명이 넘는 곳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했다. 그 중 1등을 해서 포상금도 받았었다. 갓 취업한 20대 중반이었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땐 그랬다.


열심히 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았고, 열심히 해서 성과가 나오면 뿌듯했다. 영업이라는 건 어느 업종이든 필요할 거라 생각해서 영업 실력도 쌓아나갔다.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퇴사 계획이 슬럼프 때문이라면, 내가 그 누구보다 은행을 아꼈고, 은행생활에 집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여러분들이 지금 슬럼프를 겪고 있다면 그건 그것에 집중했다는 증거이다. 너무 열심히 했기에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 해주면 된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해준다.


여기까지도 잘 해왔다고,

너는 너 자체로 충분하다고,

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도 된다고.


한번 뿐인 인생이니까 일단 시도해보라고.

다른 누구의 말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해준다.


마치 길 잃은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괜찮다고 달래주고 어루만져준다.

슬럼프가 와도 괜찮다.


존재 자체로 너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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