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러브 Oct 07. 2023

잠을 자지 않는 아이

시간집착증


눈꺼풀이 감긴다. 100 킬로그램짜리 역기보다 더 무겁다. 아무리 들어보려 애써도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아 포기하고 싶어 진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다.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 나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졸고 있는 아이는 뒷자리에 가서 서서 있게 하고, 어깨를 살짝 건드려 깨워보려고 한다. 


그 시절의 나는 독서실 마감시간인 새벽 2시까지 그곳을 지키며 아침엔 6시부터 일어나 등교준비를 하던 고3이었다. 


여고생이던 우리 교실은 설익은 땀냄새로 가득 찼다. 그 시절 우리들의 가장 큰 소원은 잠을 실컷 자보는 일이었다. 잠을 자고 싶다는 원초적인 생각이 다른 것들을 지배했다. 잠이라는 욕망 하나로 다른 생각들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 거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 거지? 나아가 학교는 왜 다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잠시.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부모님의 말을 잘 따르던 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만 가면, 잠이나 실컷 자야지. 했던 바람이 무색하게 대학시절에도 나는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 여름방학에도 강남역 6시에 시작하는 토익학원을 등록해 놓고, 집에서 5시에 나와 첫차를 타는 20살 학생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잠을 자기 싫어했다. 자는 시간마저도 아까워하는 욕심 많은 아이였다.


 잠은 왜 자는 걸까? 자고 나면 사라지는 시간이 아까웠다. 자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텐데. 왜 잠은 꼭 자야 하지? 잠을 안 자기로 해봤다. 다음날 되니 머리가 이상했다. 소주를 두 병 정도 마신 사람처럼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잠은 꼭 자야 하는 것이구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행동으로 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줄였다. 줄인 시간에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했다. 어떨 때는 연애였고, 어떨 때는 공부였고, 어떨 때는 부동산 투자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특출 난 게 없었다. 저 친구는 말을 잘하고, 저 친구는 노래를 잘하고, 저 친구는 악기를 잘 다루는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내가 잘하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내게 그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 아닌 후천적인 노력이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게 없으면 남들보다 두 배 노력하자. 



그 마음이 언제부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중간고사 시험 준비를 했다. 오늘 배운 건 오늘 복습을 끝냈다. 시험 기간 한 달 전부터 그동안 배운 것을 1 회독, 2 회독, 3 회독까지 하면서 공부를 다 마친 후 시험 전날에는 일찍 잠을 푹 잤다. 시험 날 친구들은 벼락치기하느라 밤을 새웠네, 공부를 하나도 못했네 하며 근심이 가득할 때 내색은 안 했지만 내심 든든함에 속으로 씩 웃었다.     


잠은 내게 줄이고 줄여서라도 무언가를 이루는 데 방해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절교하고 싶은데 계속 나를 따라붙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만 만나자고, 그만 함께하자고 말해도 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잠만 자기 시작했다. 하루 3시간이면 충분한 수면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의 8분의 1이나 잠을 위해 쓰는 것도 잠에게는 호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줄이고 줄여서 하루 3시간으로 생활 한 뒤 몸에 살이 쭉쭉 빠졌다. 잠은 꼭 필요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잠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수 있을까. 어떻게 잠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수많은 날을 고민했다.      


어떤 날은 잠이 오지 않아 걱정, 어떤 날은 잠을 자기 아까워서 고민, 어떤 날은 잠이 깨지 않아 고민. 잠은 내 평생을 함께 한 고민친구다. 학창 시절의 나에게 잠은 푹 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잘 시간에 성장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지나고 나니 나는 애초에, 잠을 자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시간’ 집착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집착을 넘어 강박까지 가지고 있었다. 결국 잠에 대한 집착은 시간이라는 단어로 귀결되었다. 


시간은 금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시간에 대해 엄격했다. 누군가와의 약속에서도 늦지 않으려고 항상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했다. 누군가 나에게 돈을 쓰는 것보다 시간을 쓰는 게 더 감사했다. 결국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소중함이 너무나 컸다. 시간이야말로 지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잘 살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멋지게 해내고 싶은 마음.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시간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란 결론에 다다랐다. 우선순위에 따라 잠은 가장 최하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시간에 집착한다. 5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오늘 하루를 정말 멋지게 보내고 싶다. 1분도 아끼고 아껴서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즐기고 싶다. 어쩌면 나는 돈이 많은 사람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