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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러브 Oct 07. 2023

10년의 새벽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새벽 2시 30분. 고요한 시간 나의 침대만은 분주하다. 일어나라며 깨우는 알람이 꼭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 같다. 알람은 10분 간격으로 두세 번은 더 울린다. 최후의 통첩인 마지막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몸이 일으켜 세워진다. 벌떡 가뿐하게 일어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머리에 실을 매달아 놓고 누가 잡아당기듯 힘겹게 일어난다.                    


일어나 온수를 한잔 받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책상에 앉았겠지만 요즘엔 하나 더 추가된 루틴이 있다. 바로 홈트레이닝이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갈 무렵 나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 5분을 서있기도 힘들었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40년간 운동하지 않았던 내 몸이 드디어 시위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의 반항을 잘 들어주고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10분 남짓의 홈트라고 불리는 맨손 체조를 한다. 살짝 땀이 날 듯 말듯한 몸 상태가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홈트를 마친 후에는 자리에 앉는다. 먼저 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며 함께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사진 한 장 찍어둔다. 인생은 좋은 문장들 하나하나 모여 채워진다. 그렇게 채워진 문장들로 삶은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고요한 새벽을 채우는 것은 나의 타이핑 소리와 간간히 부르는 아이들 소리이다. 


엄마, 몇 시야? 


엄마 거기 있어? 


새벽 3시에도, 4시에도 중간에 잠에서 깬 아이들은 나를 찾는다. 평소엔 자주 싸우지만 새벽에 부를 때만큼은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나를 찾는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그땐 부리나케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면 지금은 어 ~ 엄마 여기 있어.라는 말로 아이들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10년이다. 


첫째를 낳은 후 지나온 시간이. 잘하는 건 없지만 무엇이든 잘해 내고 싶다는 마음의 30살 나는, 무던히도 육아책을 읽으며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였지만,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한 뒤 생긴 아이는 내게 참 절실한 존재였다. 


첫 번째 임신이 실패한 뒤 나는 믿지 도 않는 종교를 찾으며 온갖 신에게 빌었다. 하나님 부처님 산신령님 알라신님 부디 저에게 건강한 아이를 보내주세요. 그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배가 불룩해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산모들이었다.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이 한편에 존재했던 임신 기간. 8시간 진통 끝에 전신마취 후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 아이를 안아볼 수도 없게끔 전신마취가 되어있는 상태였지만 눈 뜨고 나서 뱃속의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육아는 내 일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했던가.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아기띠를 들쳐 앉고 단 둘이 카페로, 공원으로, 저수지로 버스를 타고 데이트를 다녔다.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눈이 멀뚱한 아이를 안고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인 듯했고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엄마라는 역할. 엄마라는 역할을 선물해 준 이 아이에게 좋은 부모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참 복 받은 아이구나,라는 감정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가 우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이고, 아이가 4살부터는 고집이 생겨나는데 이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경험하게 해 주고, 어디서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자. 내 모든 선생님은 책이었다.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육아서를 꺼내 들었다. 까만색 디럭스 유모차에 곤히 잠든 아이를 옆에 둔 채 공원벤치에 앉아 육아책을 읽기 시작했다. 괜스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를 믿고 이 세상에 태어나준 작은 생명을 보며 경이로움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날 이후부터 도서관에서 육아서를 3-4권씩 대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언제 읽어야 하지?


 아이의 낮잠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네 번씩 자던 낮잠은 두 번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한 번의 낮잠으로 바뀌었다. 육아하는 엄마들에게 낮잠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 아이의 낮잠 시간이란 엄마들에겐 휴식 시간을 의미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기도 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시간인 것이다. 


무언가를 온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야겠다. 그게 나에겐 새벽이었다. 밤 8시에 아이를 재우고 12시쯤 다시 일어났다. 부엌 불을 켠 채로 책을 읽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는 종이에 써 내려갔다. 아이의 기록하고 싶은 발달사항은 하나씩 적어두었다. 오늘은 엄마,라는 말을 했다. 오늘은 뒤집었다. 오늘은 기어 다녔다. 사소한 일상이었지만 엄마로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새벽을 가득 채운 건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 바스락 대는 이불소리, 한 장씩 소중하게 넘겨지는 바스락 책 넘기는 소리, 그것이 전부였다.                    


처음 해보는 엄마 공부였지만 엄마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공부였다. 엄마 공부를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공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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