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있다.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안의 구절들이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 읽기 아까워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운 느낌, 저자에게 감명받아 저자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느낌. 책을 읽기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이다.
정말 진국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만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이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너도 알아두면 분명 좋을 거야. 우리 같이 친하게 지내자.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책을 권유하기도 한다.
간혹 집에 한 두권 꽂혀있던 유명한 자기 계발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뻔한 이야기들 잔뜩 써놓고 쉽게 작가 되네. 이런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니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내 마음은 굳게 닫혀있었고, 책은 그렇게 나와 가까워질 수 없는 친구였다. 그때 내가 착각했던 게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지식은 사실 아는 게 아니라 아는 척하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어디서 한번 들어봤다는 이유로 안다고 착각하곤 했다.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 내가 아는 게 진짜 아는 것일까?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들 중 실제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안다는 것부터 다시 정의 내렸다. 소크라테스의 격언처럼 내가 알고 있는 건 내가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 책 앞에서 겸손해지기로 했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마음으로 책 한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이는 게 달랐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본 것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한번 더 되뇌었다. 두 번 더 되뇌었다. 읽고 적고 되뇐 것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 가지가 달라졌다.
첫째, 의식의 수준이 확장되었다. 감히 이 말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책들을 읽은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음이 분명했다. 꾸준함의 힘을 알게 되었고, 뭘 해도 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오늘 하루를 더 잘살고자 다짐하게 되었고, 그 다짐들은 내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차이가 왜 생겨나는지 알게 되었다. 매일의 선택이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둘째, 책 선물을 즐겨하기 시작했다. 선물을 할 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물을 고르는 순간이다. 이 사람에겐 이 책이 도움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처럼 책을 통해서 인생의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게 되길,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인생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길 바라며 책을 사고, 책을 선물한다.
셋째,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힘든 일이나 고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책을 읽는다고. 정말 그랬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고민이 생기면 나에게 질문하기보다 타인에게 질문했다.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의 모든 상황을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나의 중요한 선택을 맡겼다. 이젠 누구에게 묻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묻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묻고 또 물으며 답을 찾기 어려울 땐 책을 펼쳐든다. 많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마다 책에서 도움을 받았다.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런 계기, 그런 물건,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계기나 사람은 언제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 주변에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인생은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