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 감사해요
사람마다 저마다 가진 습관이 있다. 습관은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습관을 돌이켜보는 것은 나에 대한 좋은 공부가 되어준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잠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자지 않는다. 아니,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자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다. 새벽에 자주 깨기도 하고, 잠이 더는 안 오기도 한다. 원래 부지런한 사람인지, 부지런해야겠다고 노력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원래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좀 더 잘까?이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인데 잠을 더 잘 것인가 기상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앞에서 나는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상을 선택하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때의 기분. 매번 상쾌하다고 말할 순 없다. 어느 날은 어찌나 무거운지, 어느 날은 어찌나 상쾌한지. 10년째 해오고 있지만 매번 다른 기분과 몸 상태가 나도 낯설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한다. 부지런한 습관을 가진 내가 좋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일을 좋아한다. 기상도 그 안에 포함이다. 독서도 포함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들. 그 일들을 더 많이 늘려가는 게 내 삶이 추구하는 것이다. 퇴사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 통제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서. 모든 것의 이유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단순하다.
부지런한 습관을 지속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잘 알아서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지도, 그렇다고 무척이나 똑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이 중간에 속해서 튀지 않고 존재감도 크게 없는 내 존재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지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부지런한 습관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그런 부지런한 모습이 비로소 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중간에 속한다는 그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학창 시절 때까지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 알았다. 남들과 비교하는 내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 후론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더 노력하는 내가 되었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나은 내 모습이 되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노력하는 습관은 1등부터 50등까지 등수로 매겨지는 게 아니었다. 그저 노력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나는 내 인생을 아끼게 되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 스스로에게 사랑을 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내가 됨을 알 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일어난다. 2시, 3시, 4시 기상 시간은 제각각 다르지만 마음가짐은 늘 똑같다. 오늘 하루도 멋지게 지내봐야지.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지. 몸을 조금씩 스트레칭해본다. 밤새 잠든 근육도 조금씩 깨어난다. 입꼬리를 올려 크게 웃어본다. 무표정이었던 얼굴이 웃고 있는 게 뇌에서 느껴진다. 그렇게 살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내 습관을 오래 지속하는 삶. 지속하고 지속하면서 매일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삶. 존재만으로 충분한 나, 하지만 사는 동안 오래도록 성장하는 삶을 사는 내가 되면 좋겠다.
일어나서 하는 일 중 대부분은 읽거나 쓰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읽으려고 한다. 잠깐이라도 쓰려고 한다. 하얀 백지에 하나둘씩 채워지는 글자를 보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잘 써야겠지만,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어깨를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쓴다. 다 쓰고 나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출지언정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다 쓴다. 쓰는 것의 원천은 내 생각에서부터 이지만 이 생각을 채우는 건 내가 본 것이 대부분이다. 눈으로 본 모든 풍경들, 책의 활자들에서 비로소 내 생각도 탄생하는 것이다.
오늘도 읽으려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온다. 내가 읽은 것이 나를 만든다. 유튜브 영상마저도 2배속으로 돌려보는 습관은 인내심을 잃게 만든다. 숏츠, 릴스와 같은 몇십 초의 자극적인 영상들이 유혹한다. 수많은 자극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독서다. 책은 2배속이 없다. 눈으로 읽은 것을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읽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한번 더 음미하며 밑줄을 긋기도 한다. 이런 차분한 시간이 나는 좋다.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간다. 지하철을 타며 출퇴근을 하는 길에 보이는 사람 99%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다. 가끔 보이는 1%의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괜히 혼자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낯선 타인에게 친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읽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짓느냐에 따라 정말 그런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많이 읽지 못하지만 오래 읽는 사람이면 좋겠다. 70살 먹은 할머니가 되어도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짧은 머리에 머리 색은 하얗고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있겠지. 얼굴엔 주름이 지금보다 열 배는 늘어 있겠지. 그 나이가 되면 같은 동화책을 수백 번 읽어주었던 나의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내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엄마가 어릴 때 책 정말 많이 읽어줬잖아요. 그게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