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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돌 May 06. 2022

복잡하게 살기

내 인생의 모토는 심플 이즈 더 베스트다. 문장은 간결할수록 명확하고 일은 체계적일수록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생각은 늘 그렇지 못하다. 아마 사랑은 내 인생 전체를 감싸고 있는 뭐랄까 포스(?) 같은 것이다. 빛 속성 마법사는 빛 계열 마법을 쓰고 언데드 속성은 좀비들을 부린다. 내게는 사랑이 그런 것이다. 내 삶은 사랑을 소모해 굴러간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나의 마나(=사랑)를 시험하는 심판대 같다. 매우 관심 있어 하는 주제와 존경하는 작가의 글인데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목차만 보고 내용을 추론할 수 있는 책을 혐오합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목차를 보고 책을 고른다. 내가 원하는 지식이 있는지, 글쓴이의 결은 나와 맞는지. 얼추 추론하는 것이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내게는 길게는 한 달가량을 동고동락해야 하는 문제인데, 목차와 내용을 분리하다니 잔인하다.


책은 '작가의 말'에 매우 충실했고, 나는 목차뿐 아니라 책의 절반을 읽었으나 여전히 작가의 의중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이 밉다. 쏟는 시간에 비해 지식은 충족이 안되고 표현은 난해하다. 오히려 작가가 비판하는 상대의 책이 훨씬 유익해서 거듭 그리워졌다.


그런데 단순히 이 책을 미워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책이 너무 술술 읽히고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미운 책들은 읽기 싫어서 끈기로 믿음으로 마지막장까지 이어가는 편인데 이 책은 슬프게도 너무 사랑스럽다. 여기서부터 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은 복잡해진다.

(나는 복잡한 사람이다. '복잡하게 살기'라는 제목을 걸고 네 번째 문단의 말미에서야 처음으로 '복잡'이란 단어를 꺼낸 걸 보면 저 망할 작가와 나의 사랑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알만도 하다.)


이 복잡함은 책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사랑(이성, 우정, 가족, 흥미, 취향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단순한 것이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책을 접해도 완벽히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완전히 미워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우리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을 복잡한 감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받아들이기에 따라 그것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역량은 달라진다.


우리는 애플의 스마트폰을 보며 엄청나게 복잡한 기술의 산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또 다른 애플(과일)을 보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깎아 먹을까 그냥 베어 먹을까 하는 생각이 고작이다. 이것이 오류라는 것이다.

사과는 단순한 것이라고 치부해두면 하찮은 것이 되지만

사과의 복잡함에 대해 이해하게 될 때, 과연 사과가 스마트폰 보다 가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류는 이미 완벽한 스마트폰은 만들지만 완벽한 사과 한 개를 만드는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단순한 것을 사랑할 때 따르는 복잡함을 존경한다.  보고타(드라마 종이의 집의 인물)가 그 많은 자식들을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사는지 보라.

그에 비해 그의 사랑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것이 위대하지 않다고 하면

당신(나)의 삶이 얼마나 텅 비어있을지 안봐도 뻔하다.


온 맘 다해 복잡하게 살라.

당신의 사랑하는 것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자.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지키기 위해 강해지자

그보가 간단명료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것조차 하지 못하면서 무슨 불평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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