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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뒤안 길

by 아난



2023. 11. 10. - 0 (5).jpg


얼마전 나는 소설창작 문학 수업에 등록 했다가 취소를 했다. 언젠가부터 무언가 막연하게 쓰고 싶고, 이야기 하나를 구성하고 완성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썼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스토리를 써보고 싶은데,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공부도 하고 작품 합평도 하면 좀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금 충동적이게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하지만 결국 첫 수업에만 참석한 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수업을 취소했다. 이 곳이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소설 창작반이 아닌 것 같다라는 느낌이 첫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지금 정말 원하는 것이 소설 쓰는 일일까? 라는 의문에서였다.


첫 수업에서 강사 선생님은 소설을 왜 쓰고 싶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고, 뒤이어 글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과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면 제대로 된 수입원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설령 글을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더라도 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전업작가처럼 글을 쓴다해도 마음이 불안할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은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익숙한 그 조언을 들으며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내가 마주쳐야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았다.


현상태의 내 인생에서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는 다른 일들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쓰고 싶다는 이유로 덜컥 시작해버린 느낌이었다. 과거에 아기를 곧 출산하게 될 친구가 아기를 낳으면 대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진지한 열망이었고, 정말 그렇게 반드시 할 것처럼 계획도 세우고 나름 열심히 움직였던 그녀였지만, 결국 아기를 낳은 뒤 육아로 인해 대학원에 대한 꿈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그냥 좋아서 내달린다고 될 일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그냥 마냥 좋은 일과 삶 그리고 생계와 연결된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있고, 좋은 싫든 후자가 가장 우선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알아야 한다. 삶에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덜컥 시작해서 운좋게 글이 잘 써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다른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깊게 숙고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인생의 여러가지 숙제들이. 과거에는 어찌어찌 동시에 진행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가 조금 어렵다. 지금은 가지를 좀 쳐내더라도 일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서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또한 소설 창작반에서 발걸음을 돌리게 된 것은 마음 한켠에서 무명 작가의 서러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인정받기 어렵고, 수입조차 없으니 어깨가 축 쳐진다. 과거에는 그냥 열정만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열심히 만든 무엇이 세상과 소통하고, 그것이 유용하게 쓰임을 받기를 기대하게 된다. 답이 없는 골짜기에 대고 계속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무언가를 쓰는 일, 창작하는 일은 정말 즐겁지만, 그것이 혼자만의 플레이가 되면 서러워진다. 한 살 한살 먹으며 느끼게 된 것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젖먹던 힘을 다해 쓰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마음 절절하게 느껴지기 하다가도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쓰고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소설가 지망생들은 모래사장의 모래 알갱이만큼이나 많은데, 소설가 등용문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기 때문이다.


소설창작반에서 보았던 수강생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래도 짧은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 마음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 들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배우와 소설작가의 공통점은 '선택' 받아야 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선택 받아야, 그들의 연기 혹은 원고가 작품화 되고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굳이 외부의 선택을 받지 않아도 유튜브나 자가출판 플랫폼을 통해 예술가들이 독자적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개인으로 하다보면 한계가 있긴 하다.


첫 소설창작 수업시간이 끝나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걸으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사랑하지만, 예전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모조리 태우며, 큰 한방을 노리며 쓰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말 그대로 가볍게 취미로 써야 하는 것이 나의 현 상황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취미로라도 쓸 수 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미로 쓰든, 한 방을 꿈꾸며 쓰든, 공통으로 중요한 것은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쌓아나갈 수 있는 인내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좌절을 많이 겪었던 것은 결과가 금방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창작의 과정, 못생긴 신생아 같고, 미숙함 그 자체인 작품 창작의 과정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정 자체도 완성된 작품 못지 않은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는 단계인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저 빨리 지나쳐야 할 무엇이라고 인지했다. 생각해보면 바보같은 일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완결된 작업을 꿈꾸는 것도 있지만, 작업을 하면서 느껴지는 몰입과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가겠다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


지난 달부터 브런치에서 연재를 시작해서 이것이 17번째 에세이글인데, 이 글들에서 꽤나 계속 해대는 소리가 '서두르지 말고', '성급하지 말고', '과정을 존중하며' 와 같은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억력이 꽤 나빠진 것일까, 나는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같은 인생 교훈을 계속 느끼며 살고 있다. 그만큼 조바심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어서 성취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종종 소리없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

'급할 수록 돌아가라'

'급할 수록 돌아가라'


벌써 7월이다. 한해의 반 이상이 흐르도록 딱히 이렇다할만 진전이 없으니 내 마음이 슬슬 성급해질 법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성내고 성급하게 굴어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 늦었으면 늦은대로, 급할 수록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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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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