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세시 Sep 15. 2020

아빠의 뒤란 샐러드

딸바보

지난주 금요일 밤.
아빠가 늦은 시각에 우리 집엘 오셨다.
손에는 배추 한 통만 한 크기에 신문으로 둘둘 말은
무엇인가가 투박스레 들려있었다.
"아빠,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아빠는 나를 흘끗 보시고는 그 특유의 매력적인,
하회탈보다 더욱 하회탈스럽게 온 얼굴에
쫘악 주름을 만들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그리고 멋쩍은 듯이 살콤 혀를 내보이고 웃으셨다.

"아이, 기지배야. 아빠가 딸네 오는데 연락하고 와야 돼?"
현관에 서서 자유로운 오른 손가락으로 내 코를 꿰어 떼며 더욱 활짝 웃으셨다.

아빠는 한숨 크게 돌리시더니 내게 왼손에 들린
그 투박한 신문지에 둘둘 만 것을 내미셨다.

"그거, 상추랑 겨자잎이랑 케일이랑 비타민채랑 그 뭐라드라 느이 엄마가 뭐라고 했는데... 아무튼 그거야."
나는 신문지를 풀지도 않고 그러냐며 냉장고 야채칸에 넣었다.

"너 샐러드 좋아한다며, 그거 약한 번 안 준 거야. 해 먹으라고."
아빠는 내 반응이 그저 그래서 아쉬웠던 것인지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응 알았어, 잘 먹을게~~"

아빠는 그다음 날 일찌감치 내려가셨다.

아빠를 홍대입구역까지 바래다 드리고 집으로 걸어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그래, 느이 아빠 되게 웃긴다?"
전화를 하자 아빠를 묻더니 이렇게 운을 뗀다.

"아니 글쎄~ 어제 퇴근하고 오더니 밥 먹으라니까 밥도 안 먹고,
뒤란에 가서 이제 막 싹 나서 한번 뜯어먹을까 하고 있던
쌈채소를 싹 다 뜯는 거야."

엄마는 계속 얘기하셨다.

"그거 뭐하게? 지금 먹게? 하니까 '아니, 지영이 갖다 주려고.' 이러면서 밥도 안 먹고 뜯더니 그대로 싸가지고 냅다 가버렸어. 허허허."
라신다. 엄마는 너무 황당해서 한동안 현관만 바라봤단다.
그 말에 울컥울컥 했다.

한낮이 되어 아빠가 잘 도착했는지 어떤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아빠, 어제 이 채소 주려고 온 거야? 아빠 드시지 그랬어. 내가 내려가면 싸주지."
라고 미안함과 고마움에 말하자

"처음 싹 난 게 제일 영양가도 많고 맛도 좋아.
첨 순 난 게 네가 언제 내려올 줄 알고 기다려주냐.
그땐 없지. 먹어봤어?"

아직 맛보지 못했지만 나는 아빠가 가신 뒤 바로 해 먹었다고,
너무 신선하고 달고 맛있었다고 잘 먹었다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우리 아빠.
이렇게나 사랑 가득한 우리 아빠.

그리고 오늘에서야 처음 냉장고에서 꺼내
그 둘둘 말아놓은 신문지를 풀고 씻어서
그것들만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먹어 본 겨자잎의 알싸한 맛이,
아무 맛도 없어 좋아하지 않던 상추 줄기의 달큼함이,
그 외의 것들의 아삭함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사진도 찍어서 보냈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흐뭇함이 담뿍 묻어있었다.


저녁으로 매우 푸짐했던
아빠의 사랑이 가득한 뒤란 샐러드.

우리 아빠는 여전히 딸바보이고
종종 딸 앞에서는 순박해진다.

사랑해 우리 아빠.

 

 

 

매거진의 이전글 첫 하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