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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나(2)

청자몽 연대기(16)

by 청자몽

국문과 졸업생의 좌충우돌 개발자 되기 프로젝트. '나는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나' 두 번째 이야기이자,

열여섯 번째 이야기 :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1997년 가을


이른 저녁에 뜬 달. 4시 반쯤이었는데, 하얀 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안녕. 반가워. ⓒ청자몽



작년 말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연대기를 쓰다가, 잠시 멈췄다. 는 게 몇 달 동안 쓰지 못했다. 이사한다고 눈알이 팽팽 돌아가게 바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1월 말이다. 이러다가 유야무야 해가 바뀌겠다.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아요.라는 뻔하고 상투적인 말로 얼버무리기에는 26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1997년까지 쓰다가 말았으니...

국문과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교육센터에서 윈도우 시스템 프로그래밍 과정을 배웠다. 그리고 6개월 만에 프로그래머랍시고 세상에 나왔다. 서류에서 다 떨어지고,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 3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고 일하다가 퇴사했다. 그러고 아르바이트로 도움말 만들어주다가 그만두고, 뭘 해야 하나 방황하던 이야기. 거기까지 썼다. 그게 '나는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나(1)'이었다.

이후에 갑자기 이어가기가 애매해서, 다른 주변 이야기를 하다가 7월 말에 멈췄다. 멈춘 부분부터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나가 쓰는 이야기가 과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뜻밖의 용기나 힘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반쯤 산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누가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아무도 청하지 않는' 노래를 계속 불러보기로 했다. 오래전이라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26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프로그램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
잡지에서 본 광고문구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문과 졸업생이 정보처리 기능사와 기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는데 말이야. 하면서 목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이다. 1년 동안 달달 외우면 딸 수 있었다.

자격증 있다고, 게다가 교육센터 다녔다고 프로그램을 갑자기 짤 수 없었다. 우스개 소리로 바늘과 실을 줘봐. 그러면 내가 뜨개질하듯 떠줄게가 안 됐다. 기본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자신도 없는데.. 하필이면 출신도 국문과라니. 무슨 배짱이람..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문득 잡지에서 본 어느 교육센터 광고문구가 생각났다. '상위 1%'를 만들어주겠다였는지, 내가 거기를 들어가면 상위 1%가 된다는 내용이었는지 정확히 문구까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만약 그 교육센터에 면접까지 통과를 한다면, 그렇다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1%가 아니라, 뭐라고 될 거 같았다.

엄마한테 가서 말씀드렸더니, 황당해하셨다. 뭐? 프로그램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네. 여기 붙으면 한번 더 해볼게요. 잘 될 거 같아요. 원래 별로 자기 생각이나 의지가 없던 아이가 갑자기 용감해지니 엄마도 동하셨던 거 같다. 해보라고 하셨다.



교육센터 면접장에서


교육센터지만, 필기와 면접시험을 봐야 했다. 첫 번째 교육센터와 마찬가지로 자격증 3개(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도 있다. 그건 그냥 땄다. 자격증이라서..)로 필기는 면제가 되었고, 면접시험을 보면 됐다. 원장님이 직접 학생들을 면접 보셨는데, 보통 분이 아니었다. 다른 지원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다. 내 차례였다.


"국문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국문과가 지원했지?"


하면서 내 얼굴 한번 보시고, 서류를 불합격 쪽으로 치우셨다. 감히? 감히요? 감히라구요? 피가 끓었다. 내가 어떻게 왔는데.. 저야말로 감히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하시냐고요!


"제가 제 돈 내고 와서 공부하겠다는데, 출신이 문제가 되나요?"


원장님 기에 눌려서 살짝 무서웠는데,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내가 말해놓고도 걱정이 됐다. 무슨 말이고. 아이고 마..


"그래? 좋았어. 그럼 한번 해봐."


그래서, 나는 다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다시 한번 잘해보자. 이번엔 제대로 공부를 해보는 거야. 기회가 주어진 데에 감사했고, 무섭지만 꾹 참고 내 말을 해서 스스로가 기특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용기를 내기 시작했던 게. 별생각 없고, 의지 없고, 나약해 빠졌다고 스스로를 툭 던져놓았던 내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원글 링크 :






저의 첫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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