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글터에 가입할 당시 필명을 '자몽'이라고 썼다. 그러다가 자몽이란 이름이 흔한 것 같아 '청자몽'이라고 바꿨다. 그런데 정작 나(청자몽)는 2022년 12월 23일까지 청자몽을 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이야기 :
닉네임(필명)을 짓는다는 건..
내 이름은 사실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가 만든 건 아니다. 이런저런 사람으로 살아라하고 부모님이 지어 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나의첫 번째 이름은 받은 이름이다.
주어진 이름으로 살다가, 문득 필요에 의해 '별명'을 짓게 된다.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내 이름을 짓는다. 그렇게 내가 지은 내 이름으로, 내가 속하게 된 세계에서 불린다. 나는 드디어 진짜 내가 된다.
이렇게나 중요한 게 닉네임, 별명이자 필명이다.하지만 정작 그 중요한 닉네임을 대충 아무거나, 몇 개로 지어보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름을 찾게 됐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우연히 정하게 된 닉네임
청자몽은 '메로골드 자몽'이라고도 불린다. ⓒ청자몽
2022년 3월에 가입할 때 가입폼을 보니, 이름을 실명으로 적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본명으로 적었다. 그런데 돌아다녀보니 다들 필명 비슷하게 쓰는 거였다. 그래서 나도 뭘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딸아이의 태명인 '자몽'으로 바꿨다.
그리고 5월에 다시 한번 닉네임을 '청자몽'으로 바꿨다. 실명인 '이현주'도 흔하지만, 검색해 보니 '자몽'인 분들도 몇 분 계셨다. 그래서 앞이나 뒤에 뭘 붙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몽이 빨간색이긴 해도 '레드 자몽'이나 '빨간 자몽'은 왠지 싫었다. 그러면 혹시 '청자몽'이라는 말은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정말로 그런 과일이 있었다. 다시 '푸른 자몽'과 '청자몽'을 놓고 고민하다가, 3음절을 선택했다. 그래서 청자몽이 됐다.
정하고 보니 마음에 쏙 들어서, 내친김에 다른 글터에 닉네임 또는 필명도 이것으로 바꿨다. 블로그는 아예 이름도 바꿨다. 하지만 정작 나는 실물로 된 청자몽을 보지 못했다.
2022년 12월 23일까지 쭉 '청자몽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청자몽으로 살았다. 청자몽을 먹었다는 사람의 글을 보기도 했지만.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걸 닉네임으로 하며 살았다. 모순이었다.
그러다가, 청자몽을 먹었다는글을 보고!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찾아보자. 나도 먹어보자. 모순을 극복해 봐야겠다 결심했다. 정말로 결심이 필요했다. 사실 '자몽'은 맛있지 않다. 그런데 청자몽이 자몽의 사촌이면 비슷하지 않을까? 이거 사면 분명 나 혼자 다 먹어야 될 텐데 어쩌지.. 하면서 결제했다. 4개에 9,900원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청자몽'
'청자몽'은 이렇게 생겼다. 껍질이 잘 안 까져서 툴툴대며 벗겼다. 향기가 아주 좋다. ⓒ청자몽
껍질 까기도 힘들었지만, 예상대로 한입 먹어본 남편과 딸아이는 맛없다고 안 먹겠다고 했다. '청자몽'은 '자몽' 옆에 살짝 오렌지가 스쳐 지나간듯한 느낌의 과일이었다. 그래도 만나서 반가웠다. 청자몽이라는 닉네임을 쓴 지 7개월 만에 실물로 처음 보는데, 그래도 2022년 끝나기 전에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3개 남은 청자몽은 내가 맛있게 먹을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장바구니에 고이 담겨있던 선물 같은 과일이었으니...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나를 만나는 시간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2022년 마지막주. 감회가 남다르다. 오늘은 2022년 마지막 월요일이다. 이번주는 다 2022년 마지막 요일들이 된다. 어제가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2022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2022년은멋진 한 해였다.
2021년 여름, 한참 자존감 바닥으로 쳤을 때, 빈집에 혼자 남아 천장 보며 문득 든 생각이 '그래도 내년(2022년)은 올해(2021년)보다 조금이라도 나았으면 좋겠다.'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았으면 좋겠다는 목표도 없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연한 바람이 이뤄졌다. 글쓰기 플랫폼을 만나게 됐다. 글을 좀 자세히 쓰며, 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주변도 돌아보고, 맨날 똑같지만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됐다. 그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만 하던 일도, 불쑥해버렸다.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년(2023년)에는 올해(2022년)보다 조금 더 나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리 겁부터 먹지 않고, 하루씩 잘 살아야겠다.
...라고 2022년 12월에 첫 글을 썼다.
나의 연대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닉네임도 정하고, 글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이하게 됐다. 내가 지은(정한) 내 이름으로 살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청자몽이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