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새콤이(16)
우리 가족이 건너는, 바다를 잠시 떠올려본다. 생각해 보니 '바다'가 꽤 많다. 많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데, 하나씩만 추려 제목을 붙였다.
6살 새콤이 열여섯 번째 이야기 :
아이의 심심海
늦둥이에 외동인 6살 딸아이는 무척 심심해한다. 언니나 오빠나 동생도 없이, 다른 가족 없이 딸랑 세 식구인데, 맨날 혼자 놀려니 얼마나 심심할까 싶다. 그렇다고 갑자기 하늘에서 누가 뚝 떨어지지도 않을 텐데.. 유치원 갔다 오면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산다.
"엄마 심심해."
심심해.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심심해 심심해. 쫓아다니면서 계속 심심하다고 한다.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말이다.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나 역시 더 어린 엄마였을 때는 '심심해'라는 말을 들으면 무서웠다.
뭔가 해줘야 하나? 장난감을 더 사줘야 하나? 내가 하는 일을 덮고 놀아줘야 하나? 저 말 무시하고 말아 버리면 문제가 생기려나? 어쩌지? 하면서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다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당황해하다가 시간이 갔다. 그런데 이제 한 두어 살 더 먹은 엄마가 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심심해? 그거 좋은데, 뭘 하면 안 심심할까? 엄마랑 바꿀까?"
하면서, 그냥 내 할 일을 한다. 적당히 화제 돌려가면서..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은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순간 엄청나게 많아진다.
어디선가 보니 '버티는 것/ 견디는 것도 익혀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학교를 다닐 때든 회사를 다닐 때든 할 일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내가 잘 보내야 된다. 그래서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도 터득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게 어떻게 하지. 내 아이가 심심하데 큰일이네... 하고 종종 거릴 때보다, 그냥 놔두는 게 훨씬 더 낫다. 심심하다고 투덜거리다가, 조금 있으면 자기가 갖고 놀걸 찾든가 뭘 하든가 한다.
'심심해'가 그냥 하는 말일까?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엄청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매일 이러고 산다. 잘 놀아주는 분들 부럽다. 아이는 주말에 1시간씩 딱 붙어서 놀아주는(사실은 누워서 쉬는 듯? 아닌 듯?) 아빠가 좋단다. 논다는 개념이 참 묘해진다.
엄마의 우울海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하다. 우울한 이유 중에 하나인 '기후 우울증'을 알았지만... 쾌적하고 하늘도 파랗고 좋은데, 옅은 우울감이 있다. 아주 심하게 우울한 날과 덜 심하게 우울한 날이 있다 정도로 구별이 될 뿐. 다시 말해서 엄청나게 큰 파도가 넘실대는 날과 살랑이는 파도가 있는 날이 있듯이..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다 떨쳐낼까 생각을 해봤는데, 별로 답이 없다. 만성 우울증일까? 답이 없어서.. 그냥 위에 아이의 '심심해'를 대처했던 방법을 적용해 본다. '우울'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있는 일들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많이 우울하다 싶으면, 우울한 게 깨끗하게 다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도 우울하지 않다'라는 건 원래 불가능한 거야. 그런 거라고.
우울해가 무서운 이유는, 다른 '바다'도 함께 몰고 오기 때문이다. 묘해, 갑갑해, 침울해, 속상해 등등... 그래서 우울해도 그냥 견뎌보려고 마음먹는다. 오늘도 약간 할 일에 쫓기다가 잠깐 내려놓고 숨 고르기를 한다. 이렇게 글 쓰면서.
아빠의 피곤海
남편은 늘 피곤해한다. 가장의 무게, 조직에서 중간자로서의 무게가 상당할 것 같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시간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추측해 보기로도 힘에 부칠 듯하다. 아빠야말로 일의 산더미에, 사람 문제에, 경제 문제나 노후 걱정 등으로 딱히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일 이외에 딱히 대화를 하지 않는 상태인데, 뭘 더 꼬치꼬치 캐묻기도 미안하다. 늘 피곤해한다. 예전에 내가 회사 다닐 때를 생각하며, 막연히 그가 마주할 '피곤해'를 추측해 본다.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을 것 같다. 서로의 어려움을 추측하며 묻지 않는다. 남편도 '피곤해' 말고 여러 가지 다른 바다 들 속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너무 깊은 바다에 빠지지 말고, 몰아치는 여러 가지 파도를 잘 헤치고, 안전하게 귀가하기를..
무사히 하루를 마감하기를 소망한다.
분명 도시에 사는데,
왜 맨날 파도와 싸우는 걸까. 참.. 쉽지 않다.
- 2022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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