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폴리아티스트와 일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늘 사이가 좋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성향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폴리아티스트와 나는 작업실 청소부터 시작해 일 진행방식, 스케줄 조율, 그리고 사소한 장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면에서 ‘투닥투닥’ 다퉜다.
폴리(Foley) 파트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폴리아티스트’와 그 소리를 녹음하는 ‘폴리레코디스트’
이렇게 늘 두 명이 함께다.
물론 혼자 작업하는 방식도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비효율적인 방법이라 통상적으로 2인 1조가 맞다.
이런 모습을 난 2인 삼각경기에 비유하곤 했다.
차근차근 발맞추어 목적지까지 가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2인 삼각경기에서 발이 묶여있다면, 소리를 만드는 폴리부스와 그 소리를 녹음하는 녹음부스는
마이크와 스피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전하는 말이 마이크를 통해 그의 이어폰으로 흐르고, 반대로 폴리아티스트가 내는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흘러 커다란 스피커로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채기하는 상황이 녹음실에서는 귓가를 찌르며 천둥처럼 들리기도 하고, 사탕 껍질을 까는 소리도 어느새 유튜브에서 ASMR을 틀어 놓은 듯 섬세하게 들린다.
기분이 좋은 날은 스피커와 마이크가 쉴틈이 없다.
부스에서 마치 라디오 DJ가 된 듯 이리저리 상황극을 하기도 하고 폴리아티스트는 래퍼로 변신해 믹스테이프 여러 개를 완성했다.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부스를 가득 채우고 스피커를 통해 이리저리 퍼져 나가면, 어느새 녹음부스는 폴리팀만의 방송국이 되어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폴리부스 공기는 굉장히 차갑다.
웃음대신 긴 한숨과 적막함이 맴돌고
유난히 크게 들리는 마우스와 키보드 ‘딸깍 딸깍’ 소리만이 스피커를 타고 흐른다.
오늘은 싸운 날이다.
싸우면 각각의 감정 정리시간이 필요한 폴리아티스트와 나는 맘 같아선 당장 일을 멈추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작업량 앞에 어쩔 수 없이 녹음을 진행해야 했다.
폴리녹음은 시작과 동시에 말을 쉴 수 없는 작업이다. 어떤 소리를 녹음해야 하는지, 물건의 재질은 어떤지, 장면과 소리가 잘 어울리는지 등 폴리아티스트와 쉴 새 없이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누구나 그럴 테지만, 싸우면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일은 일이고 감정은 감정이니 아무렇지 않게 일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폴리아티스트도 화가 많이 났는지 부스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이러고 있다간 일이 몽땅 밀려버릴 것이 뻔하니 어떻게든 시도해야 한다.
말을 안 하고 녹음하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일단 녹음할 장면을 재생했다.
혹시 폴리아티스트가 다른 곳을 보고 있을까 봐
한번 더 재생해 본다.
스피커를 통해 그가 자세를 고쳐 잡는 소리가 났는데
아무래도 내 전략이 통한 모양이다.
암묵적인 폴리녹음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한 장면에 물건이 왕창 나와서 어떤 것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말을 하면 금방 해결될 쉬운 문제를 안 좋은 감정은 사람을 어디까지 바보로 만드는지,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조금 웃긴 상황이다.
아무튼 내가 생각한 방법은 작업 영상을 콕 집어 드래그를 하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주인공이 종이를 드는 장면에서는
말없이 그 부분의 영상을 마우스로 이리저리 드래그 후 폴리아티스트에게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이게 먹힐까 라는 찰나, 그는 어디론가 가더니 주섬주섬 종이를 가져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방도 녹음하고, 핸드폰도 녹음하고, 그릇소리도 녹음했다.
말을 안 해서 좋은데, 참 좋은데,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영상에서 동시에 보이는 물건은 폴리아티스트와 내가 의도하는 바가 달라 여러 번 시도해야 했고, 좋은 소리가 어떤 건지 토론할 수 없어 답답했던 것이다.
또 조용히 드래그를 한 내 모습과 그걸 캐치하고 조용히 물건을 준비하는 폴리아티스트의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참는 것에도 점점 한계가 왔다.
그러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한번 터진 웃음은 마이크를 타고 흘러 폴리아티스트의 이어폰까지 닿았는지 그도 어이없어하며 웃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방법 덕분에(?) 우리의 싸운 날은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분노와 오기로 인해 녹음된 소리는 평소보다 탄탄하고 두터웠다.
폴리아티스트도 연기자와 같이 감정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좋은 소리를 위한다면 ‘싸운 날’ 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보다가 이내 마음을 바꾼다. 아무래도 평화가 좋다.
폴리팀의 2인 삼각경기의 결승점은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것’ 일테다.
그 과정에서 폴리아티스트와 난, 앞으로의 과정도 서로 싸우고 부딪히고의 반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어느덧 한발 두발 맞춰가다 보면 오늘처럼 ‘싸운 날’도 희미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