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내게 수학이 제일 좋다고 했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게 매력적이라며, 수학만큼 깔끔한 과목은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언니에게 난 수학이 냉정한 과목이라 받아쳤다.
정답이 정확하게 정해진 과목이 그때는 어쩜 그렇게 날카롭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어른이 돼버린 지금의 난 수학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정답이 필요하다.
정답이 없는 인생, 그렇기에 어쩌면 자유롭고 매력적이지만 때때론 수학문제집 뒤편의 정답지처럼, 만점을 받은 누군가의 omr처럼 나의 인생도 ‘딱’ 정해진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른이 될수록 인생은 어렵고 또 복잡하다.
사운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 일이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뚜렷하게 정해진 정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좋은 소리’를 찾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영상에 어울리는 ‘소리’라는 색으로 덧칠해 주는 일이기에,
오늘은 나의 소리가 내일은 당신의 소리가 언제든 답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열린 결말로 끝맺는 어느 소설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이 일이 난 참 좋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좋은 소리, 좋은 소리가 도대체 뭘까?’
누군가가 좋다고 하는 소리를 나 자신은 별로라 한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소리를 폴리아티스트는 탐탁지 않는다.
단독으로 쓰인 잘 만들어진 소리가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못한다.
자신 있게 선보인 소리가 가차 없이 거절당한다.
등의 여러 이유를 거치다 보니
울퉁불퉁한 돌멩이 같던 소리에 대한 나의 주관은
강과 바다의 물살에 이리 깎이고 저리 깎여 매끈해진 돌멩이처럼 둥글둥글 변해갔다.
이처럼 당당히 추진하는 일보다 지레 겁먹는 상황이 잦아지다 보니
답이 없어 좋아했던 일이 정답이 없어 미워지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차라리 정확한 수치가 있었으면
차라리 명확한 기준이 있었으면
차라리 통쾌한 해답이 있었으면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하는 일까지 싫어질 거 같은 마음에 잠시 ‘좋은 소리’ 찾는 것을 멈추고는
주변에 존재하는 소리에 스며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침에 분주히 칼질하는 엄마의 도마소리가 따뜻했다
내 곁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편안히 잠을 자는 반려견의 소리가 그윽했다.
야자후 하교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정겨웠다.
카페 속 커피추출하는 소리가 향긋했다.
공원을 걷는 어느 가족들의 대화가 아늑했다.
다양한 모습들의 소리를 듣고 나니
‘좋은 소리’라는 명쾌한 정답 찾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앞에서 던진 ’ 좋은 소리는 무엇일까’라는 답을 내놓아보았다.
각기 다른 모양의 빈칸들.
이것이 ‘좋은 소리’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더 이상 ‘좋은 소리는 뭘까’라는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폴리아티스트와 나의 지금까지의 미션, 그리고 앞으로의 미션이 될 ‘가짜지만 진짜 같은 소리’를 만들어낼 거다.
소리를 만들어 파는 일, 답이 없지만 마력 넘치는 이 일이, 우리가 만든 소리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작은 즐거움을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