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테이션(Cavitation)'과 침묵의 숲의 진실
Sound Essay No.81
주말에 숲이나 공원을 산책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고요하고, 평화롭고, 힐링이 된다고 느끼죠. 우리는 식물을 '말 없는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때리거나 잘라도 비명을 지르지 않으니 죄책감 없이 가지치기를 하고 샐러드를 먹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연구진의 2023년 발표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이 특수 마이크를 토마토와 담배 식물 옆에 설치했더니, 식물들이 엄청난 수다쟁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식물들도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돌변했습니다. 물을 주지 않아 목이 마르거나 가위로 줄기를 자르자, 식물은 시간당 30~50회씩 짧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우리가 듣지 못했던 그 소리는 숲속의 비명소리였던 것입니다.
식물의 비명은 어떤 소리일까요? 사람처럼 "아악!" 하고 지르는 건 아닙니다. 연구진이 녹음한 초음파(20~100kHz)를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변환해 보니, 마치 '포장용 뽁뽁이(Bubble wrap)를 터뜨리는 소리'나 '타자기를 탁탁 치는 소리(Clicking)'와 비슷했습니다.
놀라운 건 소리의 패턴이 상황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식물은 '목이 마를 때'와 '상처를 입었을 때' 서로 다른 주파수와 리듬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AI에게 이 소리를 학습시켰더니, 식물의 비명 소리만 듣고도 "이 토마토는 지금 목이 마르구나", "이 녀석은 줄기가 잘렸구나"를 70% 이상의 정확도로 구별해 냈습니다. 즉, 이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의미가 담긴 '정보(Information)'입니다.
식물은 입도 없고 성대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소리를 낼까요? 비밀은 식물 내부의 수도관인 '물관(Xylem)'에 있습니다.
물리학에 '캐비테이션(Cavitation, 공동 현상)'이라는 원리가 있습니다. 빨대로 음료수를 마실 때를 상상해 보세요. 음료수가 가득 차 있을 때는 조용히 올라오지만, 거의 다 마셔서 바닥이 보일 때 세게 빨아들이면 "쿠르르륵!" 하고 공기 방울 터지는 소리가 나죠?
식물도 똑같습니다. 뿌리에서 잎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물관 속에는 평소에 물이 가득 차 있어 장력(Tension)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지거나 줄기가 잘려 압력이 깨지면, 물관 속에 기포(공기 방울)가 생깁니다. 이 기포가 팽창하다가 "팡!" 하고 터질 때 발생하는 충격파가 바로 식물의 비명 소리입니다. 즉, 식물의 비명은 고통에 의한 감정적 외침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협받는 물리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파열음'에 가깝습니다.
식물이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누군가는 이 소리를 듣고 반응해야 의미가 있겠죠. 인간의 귀(가청 주파수 20~20,000Hz)는 이 고주파 비명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숲속의 작은 동물들은 다릅니다.
나방(Moth) : 담배 식물에 알을 낳으러 온 박각시나방은 식물의 비명 소리를 듣습니다. "이 식물은 지금 물이 부족해서 내 애벌레들이 먹기에 맛이 없겠군." 하고 판단하여 알을 낳지 않고 다른 식물로 이동합니다.
옆자리의 식물 :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식물들이 이 소리를 듣고 방어 물질을 미리 분비하여 가뭄이나 해충에 대비한다는 가설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식물의 소리는 그들만의 '재난 경보 방송'인 셈입니다.
우리가 '조용한 숲'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청력이 좁은 탓에 생긴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꽃집이나 식물원은 시끄러워서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물 줘요!", "아파요!", "벌레가 왔어요!" 하는 아우성이 가득할 테니까요.
오늘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줄 때, 귀를 기울여 보세요. 비록 들리지는 않겠지만, 콸콸 쏟아지는 물을 마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식물의 소리를 마음으로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반려 식물'과의 교감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