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인간의 사람 공부 2. 두 번째 남의 집
그동안 나는 100% 자유의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교 시절 언론학을 전공했고, 이를 더욱 깊게 연구하고 싶어서 석사 과정을 선택했다. 6년이라는 긴 학업 기간 이후에는 안정을 추구하며 정부 산하기관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그러다가 도전에 갈증을 느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성인이 된 후 15년 동안의 이 모든 과정에 쉼은 없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멋진 성과를 내고 싶었기에. 게다가 이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 자신감의 근원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믿음이 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사건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좋은 일인지 혹은 나쁜 일인지 당장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사건이 갈무리될 때쯤에서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회사원으로 재직할 때에는 몰랐다. 학과를 선택하고, 석사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이직을 한 일련의 과정이 정말 나의 자유의지였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내가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 진짜일까? 그동안 누군가 정해놓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와 회사를 다닐 때 진심으로 행복하진 않았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자발적인 의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인생 처음으로 불쾌한 의구심이 들었다. 고점을 찍은 막연한 자신감까지 맞물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쉼 없이 달리며 정해진 인생의 퀘스트를 달성하는 것에만 집중하니, 정작 나를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퇴사 후, 나와의 시간을 자주 가지며 깨달았다. 자신감 가득한 회사원 시절의 나는 Peak of "Mt. Stupid" 단계였다는 것을. Vally of Despair, 프리랜서 8개월 차의 나는 인생 처음으로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유명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사회가 정한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멈췄다. 그 대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손에서 내려놓은 것이 묵직한 만큼, 열심히 하면 빠르게 성과를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욱 바쁘게 지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뿌듯해하며, 부와 명성을 금방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진짜' 자유의지로 살아가니, 나의 부족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다시 눈을 감고, 부족함을 못 본 척하고 싶을 만큼. 이 역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지나는 지금 당장의 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쓰리다.
<남의 집> 모임에 참석을 결심한 것도 그 이유였다. 퇴사 전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내가, 이렇게 한없이 작아졌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확인이 필요했다. 나 자신과 친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나를 믿는 마음이 약한 탓이다. 다른 열정적인 사람들은 어떤 인생 계획을 지닌 채 살아가는지도 궁금했다.
꿈? 계획? 모여라 열정맨!
마음에 꿈틀거리는 열정과 꿈이 있는 사람 어디 있나요?
철저히 깨달았다. '무엇이든 처음은 힘들다.' 이 문장이 진리라는 것을. 잔뜩 부풀었던 자신감이 슬그머니 빠지고, 온전히 드러난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 15년을 자타공인 열정맨으로 살던 내가 그리웠다.
제목을 보고 홀리듯 남의 집 모임을 신청했지만, 사실 당일까지 참석을 망설였다. '지금의 나는 열정맨이 아닌 것 같은데, 이 모임에 참석해도 괜찮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모임 장소로 향하는 한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이미 아는 사람에게 작아진 내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은 지금이 원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이 혼재된 사이, 어느새 나는 남의 집 모임장소에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호스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알록달록한 공간이 매력적이었다. 파티룸을 운영하는 호스트의 편안한 공간 덕분에, 마음이 살짝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밝은 인사를 건네는 또 다른 게스트가 나의 어두운 기운을 덮어주었다. 매일 혼자 집에서 글만 쓰다가, 이렇게 밝은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는 분명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내향형 인간이지만, 절망의 골짜기에 빠졌을 때에는 낯선 타인과의 만남이 나에게 힘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 자기 효능감 회복
한껏 작아진 상태이기에, 나는 모임에서 수동적으로 도움만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다. 의외로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많았던 덕분이다.
파티룸 관련 공간사업 확장을 계획하는 호스트에게, 그동안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수많은 파티룸 협찬을 받고 홍보 콘텐츠를 작성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나눌 수 있었다. 함께 협업한 파티룸 사장님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 어떤 키워드 및 홍보 방향이 좋은 지도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회사원과 오픈마켓 셀러를 병행하고, 앞으로 인플루언서를 준비한다는 게스트에게도 내 경험이 유용했다. 나 역시 9년이라는 회사원 시절이 있었고 재직 중에 인플루언서로 선정되었기에, 그 고충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기에, 치밀하게 알고리즘까지 공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몸소 경험했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듯한 나의 경험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이 된다. 그 사실을 깨닫자, 움추러든 어깨가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것들이 의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인정받고, 치열하게 쏟은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모임에 참석한 세 시간 동안, 나의 자세가 달라졌고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2. 방향성 구체화
이번에 참여한 모임은 호스트가 무려 26회 이상 진행해 남의 집에서 인증도 받았다. 이날 함께 한 다른 게스트도 이 모임에 세 번째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들이 의아했지만, 30분도 채 흐르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호스트의 인사이트가 굉장한 덕분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능력을 제대로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간략히 요약하면, 호스트는 이성과 감성을 고루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적어도 두 단계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당장의 일을 해내기에 급급했던 나는 그 능력을 점차 잃어갔다. 깊은 사유 대신 단편적인 생각만 반복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미래를 고민하는 다른 게스트에게 내가 한 단계 정도 앞을 보고 조언을 했다면, 호스트는 적어도 세 단계 앞을 내다본 조언을 건넸다. 심지어 고민을 듣자마자 생각의 화살이 빠르게 뻗어나가는 모습을 직접 직관했기에 더욱 놀라웠다. 타인의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며, 아이러니하게 내가 지향하는 모습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호스트가 나에게 건넨 조언 역시 이성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의 고민을 모두 채워줬다.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헤매는 내게 호스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을 알려줬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로 엮고 방향을 트는 방법은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절망의 골짜기에 구원의 밧줄이 던져진 느낌이었다. 호스트는 철저히 내 상황에 녹아들어 세 단계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비싼 커리어 컨설팅을 저렴하게 들은 듯했다. 나 역시 타인의 삶을 세 단계 정도 내다보는 혜안을 갖추고, 다양한 고민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3. 공감과 유대감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약 8개월 동안 절망의 골짜기에 머물렀는데, 단 세 시간 만에 그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자기 효능감 회복과 방향성 구체화, 마지막으로 공감과 유대감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믿어준다는 것을 알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이 종종 그 사실에 무뎌지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아예 나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건네는 공감과 유대감이 오히려 큰 힘을 발휘한다.
집에서 홀로 사유하고 글을 쓰며 콘텐츠 만드는 삶을 반복한다. 내향형인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가졌고, 자연스럽게 외부의 자극을 받는 일이 드물어졌다. 침잠(沈潛). 작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나는 아직 초보이기에 자칫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내 안의 생각이 깊어짐과 동시에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어두울까. 심지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오늘 처음 만난 게스트는 나의 밝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이 좋다고 한다. '아, 나에게도 원래 그런 면이 있었지!' 타인의 말 한마디 덕분에 새삼 나와 다시 친해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굉장히 크네요!" 내 고민을 들은 뒤, 호스트가 외친 감탄에 의문이 들었다. 자존감이 한껏 낮아진 시기에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자꾸만 기대와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고요."
덧붙이는 호스트의 경험담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지금 쏘스유님이 힘든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결혼과 퇴사를 동시에 겪다니, 처음 마주하는 인생의 중요한 변화가 한꺼번에 왔잖아요. 저 역시 음악을 좋아해서, 10년 동안 뮤직 프로듀서 일을 지속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매일은 참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10년을 견뎌본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어요. 직업을 갓 전향한 지금은 적어도 3년 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어요. 적어도 3년, 아니 5년까지는 좋아하는 일들을 그냥 즐겨보세요. 결과는 그냥 나중에 생각하는 게 어때요? 어차피 쏘스유님은 잘 되실 게 눈에 보이니, 그 과정에 조급함만 덜어내면 좋을 것 같아요. 답을 찾으려는 생각도 버려보세요.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은 죄책감 없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쏘스유님의 머릿속에는 휴식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시간이 가장 필요해 보여요."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정확히 짚어내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자기 효능감 회복, 방향성 구체화, 공감과 유대감. 2022년이 3일 남은 지금, 드디어 좌절의 골짜기를 지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설명한 그래프처럼, 2023년의 나는 좌절의 골짜기를 벗어나 이제 깨달음의 고행길을 걸을 예정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대가 크다. 여러 곳에서 사주를 볼 때마다 나에게 곧 오랜 기간 동안 대운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괜찮다. 내가 그 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 덕분이다.
인생에서 좌절의 골짜기는 한 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 어두운 시기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지금보다 한결 수월하게 그 시기를 겪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나 역시 어두컴컴한 좌절의 골짜기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과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겠다고 다짐한다. 2023년은 내 안의 열정에 불이 붙어서 행복한 열정맨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의집 : https://bit.ly/3Vf9GH1
이 콘텐츠는 남의집 서포터즈 취향여행자로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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