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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진짜 의미

성해나 <혼모노> 서평

by 책 읽는 라푼젤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괜스레 찜찜한 마음이 드는 영화들이 있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앉은 듯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주는 영화. <기생충>이 그랬고, 최근에는 <어쩔 수가 없다>가 그랬고, 바로 이 책이 그랬다.


분명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인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삑사리를 낼 듯 위태위태한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달까. 가벼운 글감인데도 편안하게 읽히지가 않았다. 이 책에는 피 튀기는 암투나 폭행, 살인, 섹스 따위의 자극적 요소들도 없고, 눈물겨운 신파도, 그 흔한 사랑이야기도 없다. 마침내 터진 사건들 역시 맹숭맹숭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편 하나를 읽어낼 때마다 복잡한 머리를 식혀내야만 했을 정도로 몰입했고, 들떴고, 고조되었다.


이게 보기에는 비슷해도 우렸을 때 차이가 나거든요. 가짜는요, 마실 때 몸이 거부합니다. 역겨운 향도 나고요. 빛 좋은 개살구죠.


감독의 치부를 애써 덮어내는 것을 '진짜' 팬심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취향을 함부로 깔보는 이들을 '진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볼 수 있을까. 발톱이 빠진 호랑이는 '진짜' 맹수가 맞을까. 큐레이터를 갖춘 갤러리가 있는 고급아파트와 광화문 광장을 이승만 광장이라 말하는 태극기 부대 중 '진짜' 한국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신령이 떠나간 무당이 작두를 타는 데 성공하면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목적과 의도에 몰두하여 인간을 배제한 설계는 '진짜' 건축이라 할 수 있을까. '진짜' 수평적인 관계란, '진짜' 순수한 의도란 무엇일까. 강규 선배와 권도우 씨는 '진짜' 마을을 살리고 싶었던 걸까. 서진의 엄마와 지지(할아버지)는 '진짜' 서진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림에게 '진짜' 친구란 어떤 것일까.


이 책에는 진짜와 가짜가 혼동되어 있다. 아마 작가가 이 단편들을 한데 엮은 것도, 그리고 '혼모노'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읽으면서 왠지 거북했던 느낌은 그것이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읽다 보면 결국 하나의 생각에 가닿는다. 우리는 왜 '진짜'에 열광하는 걸까. 우리가 믿는 것들 중 '진짜'라고 여길만한 것이 있긴 할까.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생충'을 본 뒤 왜 내가 그토록 무거운 마음이 들었는지 한참을 생각해 봤다. 결론은 이거였다. 찔렸거든. 내가 살아오면서 때로는 기택이었고, 또 때로는 박사장이었기 때문에. 물론 기택이나 박사장처럼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의 모습에 내가 언뜻 비추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보며 느꼈던 불편한 감정, 은연중에 학벌이나 직업, 사는 곳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얄팍함, 대학 진학과 취업, 결혼을 거치면서 멀어진 어릴 적 친구들, 성공을 위해 타협했던 현실들, 애써 외면했던 타인의 상처와 묵인했던 불공정함. 그런 것들이 이 책에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내 치부를 공격당한 듯 부끄럽고 헛헛하고, 찝찝했다.


부엉이는 성급히 날아오르지 않는다. 날갯짓을 하기 전 충분히 주변을 살피고, 신중히 방향을 정한 뒤 착지한다.
나 역시 예리한 발톱으로 문장을 낚고, 너른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포착하며 열린 귀로 멀리 떨어진 이들의 이야기까지 경청하고 싶다.
- 작가의 말 -


주말에 떼쓰는 아이를 달래려 뽀로로 한 편을 틀었다가 뽀로로 친구들의 눈물겨운 우정과 배려에 감동받아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아연실색하며 어린이도 아닌 유아용 유튜브를 보고 우는 게 말이 되냐며 나를 질책했다. (근데 내가 뽀로로를 보다가 운 것은 그게 처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뽀로로와 친구들'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투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동화 같은 결말 대신 현실적이고 차갑고 때로는 불쾌한 결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어른'으로서 감당해 내야 할 몫이겠지.


아이는 기린과 호랑이를 정말 좋아한다. 아마도 주말에 나는 또 동물원에 갈 것이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며 연신 셔터를 누를 것이고. 아이가 더 크면 보안이 삼엄하고 이질적인 조경을 가진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스스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속이는 날들이 많아지겠지. 그런데 진짜, 그래도 괜찮을까.


KakaoTalk_20251126_122445861_01.jpg 2025년 10월 30일, 마흔네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SJY

1. '혼모노'는 독자에게 강력한 물음표를 던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작두를 타는 소설 속 '나'는 피범벅에 몰골이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 미소가 드리워지며 비로소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본 신애기는 아연실색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이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요.

-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여기서 진짜 무당은 누구이고, 흉내만 내는 놈은 누구였을까요?


2. 일본어로 혼모노(本物)는 ‘진짜·진품’을 뜻하며, 사람을 칭찬할 때 ‘진짜 물건’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대상도 진짜로 좋아하는 것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 여러분이 생각하는 '혼모노'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가짜를 진짜로 오해했던 경험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3.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 화자는 감독 김곤을 덕질하면서 윤리의식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리고 김곤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아동학대 사실을 시인하고 사죄하자, 그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립니다. 화자의 마음의 변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만의 해석을 들려주세요.


4. '길티플레저란' 죄책감과 쾌감이 동시에 몰려오는 아이러니한 양가적 감정을 의미합니다. 쉽게는 어디에 내놓기 부끄럽고 두렵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혹시 여러분의 길티플레저가 있다면?


5. '잉태기'에서 엄마와 시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지나친 통제 또는 소유로 드러나는데요, 출산을 앞둔 임산부 서진에 대한 점유율 경쟁이 극도로 거세집니다. 출산을 어디서 할 것이냐의 다툼 속에서 서진 본인의 의견은 중요치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혹은 가정할 때), 나는 얼마만큼이나 자녀를 통제하는 부모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방식으로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가요?


6.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공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개선하지 못하고, 결과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버리는 여재화.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목적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파괴된다는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구보승.

- 여재화는 왜 구보승을 설득(또는 저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러한 노력을 했다면 구의 집의 모습은 바뀌었을까요?
- 여러분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이 주어진 적이 있나요?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나요?


7. '스무드'에서는 한국에 처음 방문한 한국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대상을 무려 '태극기 부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이러한 독특한 설정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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