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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Sep 08. 2019

인간은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는 진화심리학 입문서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이성적이기에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욕구와 본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잡하다. 때때로 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할 때마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지 실감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은 도무지 엄두도 안 난다. 


왜 이렇게 인간은 복잡한 걸까? 

몇 가지 명확한 수식이나 기능으로 정의하면 편리하겠건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진화심리학은 오랜 진화 역사를 통해 한 종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지니게 된 심리나 행동 기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어떤 상대를 사랑하는지, 남녀 성역할은 왜 다른 것인지,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니는지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와 진화심리학적인 이론이 소개된다.


인간은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같은 심오하고 추상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진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때로는 구차하기까지 한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톱이 판자 자르기, 드릴이 구멍 뚫기를 각각 잘 수행하게끔 특수화된 공구들이듯이,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히 담긴 연장통이다. 비록 전기 대패나 슬라이드 만능 각톱처럼 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필요성이 대두된 첨단 공구들까지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톱이나 망치, 드라이버처럼 전통적인 공구들만 들어 있는 오래된 연장통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가끔씩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수렵 채집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본성들이 때때로 현대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회와 문화는 빠르게 변했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우리의 본성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


요컨대,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텅 빈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만 년 전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해 주었던 행동 지침들로 빼곡히 채워진 두툼한 가이드북이다



책에 소개된 오래된 본성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정리했다.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개인주의적인 이유

대체로 우리는 문화적인 이유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개인주의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문화는 본성 이후에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왜 서양에서는 개인주의가, 동양에서는 집단주의가 발달한 것일까.

바로 병원균 때문이다.


과거에 병원균이 득세했던 수준은 각국의 집단주의 지수와 정비례했고 개인주의 지수와 반비례했다. 덥고 습해서 병원균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춥고 건조한 북유럽이나 극지방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주의가 병원체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집단주의의 특징(내집단과 외집단의 엄격한 차별과, 권위와 전통에 대한 순응)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결속시키며 외부 집단으로부터 유입될 낯선 병원균에 대해 경계한다.

지역에 따라 달라져야 했던 생존전략이 태도의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성과 여성의 본성적 차이

배우자를 고르는 관점

여성은 배우자를 고를 때 상대의 지위와 재산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본성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안정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은 이에 대한 욕구가 덜 하므로, 성적으로 매력적인 상대를 찾는다.


번식 성공도에 따른 태도의 차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번식할 때 우위에 서있다. 여성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찾아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남성은 여성이 원할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으면 번식률이 0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더욱 도전적이라고 한다. 

번식 성공도의 측면에서 남성은 잘하면 대박, 못하면 쪽박인 신세기 때문에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 기상천외한 모험에 뛰어들어야만 번식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사업에 뛰어든다던가 안정자산보다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이런 본성에 의해서라고 말한다.


유머감각에 대한 능동적 수동적 자세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자신의 애인이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지만, 여기서 ‘뛰어난 유머 감각’이 의미하는 바는 서로 정반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성은 남을 잘 웃기는 여성보다 자신이 던지는 유머객관적으로 보면 심히 썰렁한 유머일지언정 잘 이해하여 즉시즉시 큰 웃음을 터뜨려 주는 여성을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반면에 여성은 자신이 던지는 유머에 잘 반응해 주는 남성보다 무조건 자신을 잘 웃겨 주는 남성을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이 부분은 읽고 좀 그랬는데, 나는 보통 남을 웃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그동안 음..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귀중한 챕터이다. 후. 


인간과 반려동물은 기생 관계이다.

인간과 반려동물은 기생 관계라는 표현이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

본성적으로 인간의 번식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반려동물을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지. 마치 우리가 개개비이고 반려동물이 뻐꾸기로 비유된 건 거부감이 들지만, 기생 관계라는 점은 이해가 갔다.

진화심리학자인 존 아처 John Archer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도 기생 관계라고 본다. 뻐꾸기 새끼가 개개비 어미로부터 먹이와 안식처를 뜯어내듯이, 반려동물도 인간의 정서적 반응, 특히 자식을 향한 부모의 절절한 사랑을 착취하여 음식과 보금자리를 얻어 낸다. 요컨대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반려동물도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처럼 인간에게 빌붙어 사는 군식구이자 기생체라는 것이다. 물론 반려동물이 인간을 착취한다는 말은 마치 공포 영화에서처럼 반려동물이 주인을 해치려는 어떤 음험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식을 양육한다는 기능을 수행하게끔 진화한 인간의 정서 기제가 뜻하지 않게 반려동물의 번식 성공을 높여 주면서 인간에게는 번식상의 손실을 끼침을 의미할 뿐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오래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동물이다. 

나와 우리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이 오래된 본성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마케팅 또는 사업에 이용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미 마케팅 분야에서는 진화심리학의 연구 내용들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실용적 활용이 아니라도,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과 현상들을 진화심리학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은 폭넓은 주제를 가볍게 담고 있는 진화심리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맺음글에 주제별로 몇 가지 서적을 추천해줬다. 소개된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얕게나마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긴 것 같아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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