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No Man 1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승원 Feb 18. 2022

뮤비 한편에 얼마나 해요?

내가 왜 50만원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없는 것인지 딱 알려준다.

오늘 홍대에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웬 뮤지션 하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회사가 아닌 뮤지션 본인이 직접 연락을 했길래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짧은 인사와 자기소개 뒤에 바로 대뜸 “50만 원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부터 날아오는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왜 인디 뮤지션들은 50만 원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단 하루에 1500 만 원 정도는 드려야 하는 촬영 조명팀을 부르지 않고 연출 감독이 촬영까지 직접 진행한다는 전제 하에 한번 계산해보자. 일단 뮤직비디오는 그래도 영상 작업이기 때문에 옮겨야 할 장비도 많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규모의 인디 음악의 뮤직비디오라 하더라도 감독 포함 어시스턴트 2명은 더 필요하다. 보통 뮤직비디오는 15시간 이상은 촬영을 해야 하기에 아무리 막내 조수의 견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인당 20만 원씩은 줘야 해서 거기에서 40만 원이 발생하게 되고 카메라 장비 렌털의 경우에도 아무리 저렴한 카메라와 렌즈, 조명 라인업으로 하더라도 기본 40만 원 정도는 발생한다. 아 카메라 감독 걸로 하면 되지 않냐고? 응, 감독 카메라도 돈 주고 사는 거다. 그것도 엄청 비싼 돈 주고 말이다. 로케이션의 경우 암만 저렴한 로케의 경우에도 기본 한시간당 7만 원씩은 한다. 아까 말했지만 기본 촬영 시간 단위는 15시간이다. 암만 못해도 100~150만 원대의 로케이션 비용은 발생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차량 및 유류대가 20만 원 정도가 발생하고 식대가 20만 원은 발생한다. 미술이나 기타 비품 등도 암만 아껴도 20만 원 정도는 발생할 거고 말이다. 감독료 제하고 여기까지만 계산해도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면 자기는 50만 원 줄 테니 생전 처음 보는 감독에게 자신의 뮤비 제작비 250만 원을 내서 만들어 내란 말인가? 자식이 그런 부탁을 해도 머뭇거릴 판에 처음 보는 사람이 그런 제안을 내게 건넨단 말인가? 미칠 노릇이다.

아니 그리고 일단 위의 계산의 전제부터가 매우 잘못되었다. 감독료를 도대체 왜 뺀단 말인가. 인디 뮤직비디오도 한편 만들려고 투닥거리다 보면 한 달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나는 유부남이고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있고 한 달에 몇 백씩 내야 하는 사무실이 있고 남들만큼 월급을 받는 직원이 두 명이 있다. 그런 내가 왜 지난 15년간을 갈고닦은 영상 제작이란 업을 그 여자를 위해 공짜로 기부하여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노래도 솔직히 미친 듯이 구린데.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진수영 님이나 김오키 님, 언니네 이발관 (슬프게도 해체했지만), 나이트 오프, 검정치마 정도의 뮤지션이 그런 제안을 했다면 “적어도 로케 비용과 스탭비, 식대만 챙겨주시면 제가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고 그들의 작품 세계에 기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영광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정도의 심적 여유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정말.


물론 나도 10년 전에는 50만 원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적이 있었다. 일단 그때 나에게는 포트폴리오도 없었고 딱히 그 외에 다른 기회도 없었기에 달리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 집에서 얹혀서 살아가는 백수였기에 딱히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나에게 돈 50만 원을 건네주며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길 바라던 인디 힙합 뮤지션들의 속내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유명하고 잘난 내가 아무것도 없는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니까 돈타령하지 말고 니 모든 걸 쥐어짜 내서 찍어. 알았지?”라는 심보였겠지. 이건 나의 억지스러운 예측이 아니다. 어떤 멍청한 놈은 실제로 저런 식으로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50만 원으로 뮤직비디오를 어떻게든 우격다짐으로 찍어봤자 비용 때문이란 물리적인 이유로 인해 볼품없는 포트폴리오만 계속 쌓이게 되고 나란 사람은 “싼 맛에 영상 맡기는 애, 하지만 뭔가 전문성은 부족한 애.”의 타이틀만 남게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 위해 정말이지 더 많은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내가 길 가다 그 뮤지션을 붙잡고 처음 보는 나를 위해 세션비, 믹싱비 등을 자기 돈 250만 원을 들여 곡을 쓰게 만들고 한 달 동안은 나만을 위해 작업해라고 말한 다음 작업 수정을 10번 넘게 시켜버리면 그 사람은 나한테 도대체 뭐라고 말할까?

내가 그 견적에는 도저히 뮤직비디오를 들어갈 수 없다고 하자 그 뮤지션은 나에게 “제가 이쪽 업계는 잘 몰라서요.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정말 좋게 좋게 생각하자치면 그 사람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장비나 로케이션 렌탈비나 스탭 인건비 같은 것들은 몰랐을 수도 있다. 뭐 그건 맞다. 그렇지만 아무리 몰랐다 하더라도 적어도 전문적인 기술력을 가진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자신만을 위해 매달려서 일을 해주었으면 적어도 얼마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조금만 계산해 볼 필요는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50만 원이란 이야기는 안 꺼내지 않았을까? 해당 가수를 검색해보니 연세대를 나왔다는데 그 정도의 머리라면 적어도 저런 계산은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마음이 갑갑해질 따름이다. 이 나라는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게 그림 그리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영상 찍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은 가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듯하다.


우리는 영상 제작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고 값비싼 장비들을 사들여야 했고 주말 보장과 야근 없는 삶 따위를 포기한 워라밸이 무너진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 먹먹은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설움과 스트레스를 겪더라도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업계에 남아 있으며 잘 나온 작품 하나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부디 우리에게 가난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뮤직비디오를 더 이상 촬영하지 않을 예정이니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고? 너 같은 애들 때문이지 왜겠어!!


이전 15화 나무위키를 통해 바라보는 사람들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