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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No Man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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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Feb 18. 2022

시나리오도 좋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1월 1일 신정, 아침 9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전날 숙취에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임에도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일면식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어느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당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는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하나 썼는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꼭 읽어주시고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며 마치 준비한 듯한 멘트들을 뱉어냈다. 적어도 신정에는 그 어떤 지독한 클라이언트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특히나 오전 아홉 시라면 더욱 그러하다. 적어도 나는 영상 일을 10년간 해오면서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나는..

나는 "이런 날에 이런 이유로 아침부터 연락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경우이고, 그 어떤 감독이나 제작자도 이 전화를 받으면 불쾌해서라도 그 시나리오를 더 안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그런 걸 써서 보낸다는 것 자체가 번지수를 굉장히 잘못짚어서 보낸 거고 (왜냐면 나는 보통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일을 하고 있고 영화도 하고 싶지만 내 시나리오가 아니면 영화를 찍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 지조차 파악도 못하면서 대뜸 전화해 그런 부탁을 한다는 건 안 될 일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통할 인간이라면 전화도 안 했겠지 싶어서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자기 PR의 시대에 발맞추어 새해부터 자신의 시나리오를 만천하에 알리리라!"라는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겠지? 그런 자신을 마치 열정의 아이콘 정도로 스스로 치켜세우며 불 같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며 뿌듯해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오글거리고 화가 난다.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시나리오를 쓸 수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적은 시나리오는 꼭 읽어보면 캐릭터들이 다 지같은 사람 1, 지같은 사람2, 지같은 사람3 이렇게 구성되어 있더라. 그런 시나리오 들은 볼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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