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할 건 욕하고 배울 건 배우자
라떼는 어렸을 적에 우뢰매라는 로봇 장난감이 인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또봇 혹은 카봇같은 어린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자 선망의 장난감이었다랄까? 나중에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이라면 우뢰매에 나오는 모든 로봇들은 일본 장난감들의 카피였고 머리 정도만 대충 디자인해서 바꿔준 물건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건 뭐 비단 우뢰매만의 문재가 아니고 사실 그때 나오는 모든 로봇 완구들이 그러했었다. 로봇 태권브이부터 스페이스 간담 브이까지.. 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했겠지만 일단 저작권에 관련된 의식과 양심의 부재가 있었을 것이며 어차피 콧물 쟁이 애새끼들이 보는 거 대충대충 만들어도 잘 팔려나갈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다른 건 다 둘째치고 그런 로봇 장난감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던지 금형을 설계해낼 능력도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코 묻은 쌈짓돈은 털어내고 싶었던 거지.
이게 비단 로봇 완구만 그랬을까 서태지를 비롯한 수많은 당시 유명 뮤지션들은 표절을 뛰어넘어 번안곡 수준의 노래들을 발매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도 또 온갖 아티스트인 척은 다해대면서 말이다. 또 그것뿐이었을까? 영화부터 드라마 예능 등의 온갖 미디어들은 해외의 유명한 것을 쫓아서 따라 해야만 먹히던 시기였다. 생활용품들부터 전자제품, 과자, 패션까지 모든 것들이 짭퉁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갔던 것이다.
이번에 중국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때문에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개막식의 문화 공정 논란부터 편파판정 논란 때문이다. 나도 그 뉴스를 보며 참 중국이란 나라도 정말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사람이나 나라나 교양과 체면이란 것을 배우지 못한 존재가 성공과 부를 거머쥐었을 때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라는 게 늘 참 구리고 볼품없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요새 유독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이트의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중국인들의 미개하고 우매한 국민성에 대해 욕하는 글들을 수도 끝없이 찾아볼 수가 있다. 뭐 나도 대부분의 말들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의하기도 하고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혐오가 대단히 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국인들을 비웃거나 욕하는 여러 가지 부분들 중에 유독 내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그건 중국인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타국의 문화를 표절을 하거나 전자제품 등의 기술을 빼돌리거나 짭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욕하는 것이다. 적어도 다른 문제로 중국인들을 욕하는 것은 백번 옳은 것이 많지만 그 문제만큼은 우리나라는 내로남불의 의혹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우리나라야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일본의 문화와 기술, 미국의 문화를 수도 없이 베껴댔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횟수가 옛날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표절과 짭퉁이 넘쳐나고 있다. 대기업부터 도메스틱 의류 브랜드들까지 외국 패션 브랜드의 옷의 카피를 떠서 팔아대고 있고 가짜 수입가구와 조명들은 온갖 온라인 샵을 점령해서 되려 진품을 찾아내기가 더욱 힘든 지경이다. 그리고 아직도 몇몇 래퍼들은 외국 최신 유행곡을 누가 더 그럴싸하게 먼저 한국식으로 번안해낼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 있고 말이다. 그런 것들의 예를 하나하나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그 부분에 있어 누굴 욕하거나 비웃을 수 있을까?
나는 직업 특성상 중국인들과 몇 번 다양하게 일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이 있다. 사진 일로 중국 쇼핑몰을 찍었을 때는 촬영이 끝나면 무조건 당일날 페이를 봉투에 넣어 내게 건네준다는 점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점이 너무 놀라워서 그들에게 이렇게 당일날 주는 건 처음 봤다고 원래 이렇게들 하시냐고 물어봤다. (그때 당시에 두 시즌이나 화보 촬영 페이를 주지 않은 브랜드부터 앨범 재킷 촬영해주었는데 15만 원 밖에 안 되는 돈을 반년 뒤에 주는 가수까지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돈을 늦게 주는 양아치들 틈 사이에 슬프게도 그것에 적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오늘 줘야지, 오늘 안 주면 당신이 내가 언제 돈을 줄 것인지 어떻게 믿고 일을 하겠어?. 우리(중국)는 원래 다들 이렇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망치로 머리를 띵하니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니들 말이 맞지.. 맞네..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겠어... 게다가 구면도 아닌데..”라고 속으로 되뇌는 순간이었다. 몇 년 뒤 뮤비 감독이 되어 받은 중국 아이돌 영상 제작 건도 정말 내 생애 일하면서 가장 깔끔하고 신속하게 미수금을 받아내어 정말이지 기분 좋았던 촬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몇몇 한국의 클라이언트들은 프리랜서들이 제때 입금을 원하면 “나 못 믿어? 내가 때 먹을 사람으로 보여?”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계약서에 적힌 날짜에 입금을 원하는 작업자를 되려 돈타령만 하는 속물처럼 보는 경향도 있어서 억울한 심정이 되어버리고 말 때가 많다. 사실 돈 때문에 일하는 거고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 아닌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미수금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 슬픈 상황일 때가 나는 많았다.
제발 저 부분만큼은 중국을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처럼 또 욕할 건 시원하게 욕하면서도 말이다.
갑자기 예전 어느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저번에 유명하고 잘 나가는 뮤비 감독이랑 작업을 했을 때는 미수금을 1년이나 2년 뒤에 줘도 별 말이 없어서 나도 사업을 좀 안정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됐었는데 강 감독이랑 하면 하도 짤 없이 계약서대로만 달라고 조르니까 작업을 맡기기가 좀 망설여져. 자기가 돈이 없다고 이 바닥에서 눈치 없이 자꾸 돈타령만 하면 일 들어오기가 힘들어져.”라는 훈계조의 말이었다. 그때 그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던 표정도 참 가관이었는데 이건 글로 표현하기에 참 힘든 부분이라 생략하기로 하고.. 나는 그날 왜 이런 꼴까지 당하며 이 일을 이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느라 차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왜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찍소리도 못 하고 얼굴을 붉히고 만 것일까? 참 어이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