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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15. 2023

어느 누구도 속상하지 않을 계절

일상 04


좋아하는 친구들과 조금 먼 나들이를 다녀왔다. 강화도는 강화도 회군 말고는 친숙하지도 않고 가본 적도 없었던지라 관심이 없었는데, 조양방직은 꼭 가봐야 하겠다기에 못 이기는 척 갔다가 정말 훌쩍 넘어가버렸다. 사실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조양방직이 어딘데… 우리 어디 가는거야… 나 팔러 가는거야… 하며 우왕좌왕하다 저 거대한 철문을 넘어서기 직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낡은 버스부터 시작해서 오래 된 우체통, 고소한 버터 냄새와 빵 냄새까지 오감이 단단히 비틀렸다.



여전히 옛날 냄새가 켜켜이 묻은 것들을 좋아한다. 내가 가보지 못 한, 내가 겪어보지 못 한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어. 탐구심이 넘쳐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저 가지지 못해본 것은 다 손에 넣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못난 욕심 때문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앤틱한 물건들을 다 만지고 가져와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 눈만 뜨고 봐도 오래 된 물건들 위의 먼지, 철껍질의 누런 녹들, 손때, 찢어진 흠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풍파와 함께 했는가 절실히 느끼게 만들어서, 그 부드럽고 수동적이면서도 강압적인 시간의 단층에 떠밀려 눈으로 구경하고 마는 것이 전부였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단언컨대 아주 오래 된 잠수복 헬멧이었다. 즐겨 했던 게임 속에서 그래픽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고 만져보니 새삼 마음이 들떴어. 오래 된 사진기나 전화기는 기계만 보면 눈이 홱 도는 내게 윤활유 같은 물건이었고, 언제 발매되었는지 모를 낡은 바이닐 커버는 설렘이 되었다. 새삼 또 다시 누군가가 한참 생각나 카메라를 들고 눈만 깜빡이다 찍고, 깜빡이다 찍고. 아마 그가 왔더라면 참 좋아했겠다는 생각 반, 그러다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신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은 참 야속하게도 빨리 가는데 우리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은 요즘 내 또래라면 다 가지고 있는 고민인가보다. 나도 다를 것 없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에게 답이 되는 계절이 오기를 바라. 천천히 와도 좋으니까, 어느 누구도 속상하지 않을 그런 사계절마냥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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