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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24. 2023

 글을 왜 쓸까

재미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무엇을 어떻게 쓸지 고민했지만 왜 쓰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 글쓰기가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 어떻게, 왜, 이 세 가지는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무엇’은 내용이고, ‘어떻게’는 형식이며, ‘왜’는 당위성이다. 그것이 충족된다면 글을 안 쓸 이유가 없는데, 나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생각한 적 없다. 납득되지 않으나 솔직히 그랬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늦게나마 문학을 전공했고, 작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난 작가 여부와 상관없이, 글쓰기는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전업 작가의 길을 추구했으나 생계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항상 그쪽을 바라보았다. 퇴직한 지금도 여전히 전업 작가의 길은 요원하다. 아직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그것 또한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가로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생활하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하니, 웬만한 결심으로 전업 작가가 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업 작가로 살고 싶을 것이다. 여건이 그렇지 못하니까 관련된 일이나 다른 일을 하면서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리라. 간혹 용단을 내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작가가 되어 책을 한 권 출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누가 금세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두 권 세 권 출간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열 권을 출간해도 마찬가지인 경우를 보았다.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 수 있고, 작품 자체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 권으로 유명해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요즘, 작가들이 하는 말이 있다. 책을 내고 재판 찍는 게 소원이라는. 출간을 해도 재판 찍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어도 그렇다.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는 게 작품성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홍보 효과 또는 작가의 인지도와 상관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한 번 찍을 때 보통 3,000부였는데, 요즘엔 1,000부를 찍는다. 그래도 재판은 힘들다. 유명 출판사 대표의 말이니 신빙성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글쓰기가 좋아서다. 왜 좋으냐고 한다면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지극히 자기 성찰적이다. 내 삶을 성찰함으로써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사는지, 내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사유한 것을 정돈하고 언어로 구조화하며 조직한다. 그러한 일련의 작업이 나는 좋다.


살면서 겪은 경험의 비늘조각들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소설이든 수필이든 시든 어떤 문학형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즐겁다. 또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들을 현실 속에 재현시키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그것을 제대로 잘 형상화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뒤로 하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탐구해 언어로 그려내는 작업, 글쓰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것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삶에서 그것이 소중하지 않을까. 아니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렇다. 글쓰기, 특히 문학적 또는 정서적 글쓰기는 이것이 중요한 좌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실용적 글쓰기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실용적 글쓰기를 통해서 글 쓰는 사람의 생각이 명징해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글쓰기는 장르에 상관없이 모두 의미 있다.


목적을 두고 글을 쓰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또 이루게 되었을 때, 글 쓰는 즐거움을 잃을지도 모른다. 목적을 두고 글 쓰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을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 있다. 공부하는 것의 목적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라면, 급제 후에 공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글쓰기의 목적이 이름난 작가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이루고 났을 때의 행보를 경계할 따름이다.  


결과 중심적으로 본다면, 나는 학위 받느라 재산을 잃었고 글 쓰느라 에너지를 허비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과정들을 즐겼고 나를 발견했으며 행복했다. 물질적 손실이 있든 에너지를 소비했든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행복하려고 사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 삶의 여정은 나쁘지 않다. 글 쓰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은 채 썼다면 내가 그 행위를 즐기기 때문 아닐까. 그럼 되었다. 학업도 그렇고.


나는 왜 글을 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다.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쓴다고 말할 수밖에. 나를 발견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성찰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겠으나, 따져볼 것도 없이, 글 쓰는 게 좋아서 쓴다. 싫증 나지 않는다. 써지면 써져서 좋고, 안 써지면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조금 더 과장해서 가장 재밌는 게, 먹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니다. 글 쓰는 거다. 그러니 이유를 더 찾을 필요 있을까.


나와 같은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꾸준히 쓰다가 작품이 좋아지면,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처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 때문에 좌절하지만 않고 그 자체를 즐기는 거라면 가장 좋은 취미생활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글로 말하고 싶고, 글쓰기가 좋으며, 즐거워서 쓴다. 욕심이 있다면, 내용이 알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나아가 감동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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