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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28. 2023

나는 왜 작은 것에 연연하는가

오류, 바로잡아야 한다

 

돌단풍 꽃이 피었다. 바위나리로 불리는 꽃. 마해송 작가의 동화가 생각나는 꽃이다. 바윗돌 옆에 뿌리를 내리고, 잎사귀와 함께 꽃대가 올라온 후 별 모양의 꽃이 하얗게 핀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면서 앙증맞은 꽃 돌단풍, 아니 바위나리. 잎사귀가 단풍잎과 비슷하고 돌 옆에 뿌리를 내린다 하여 돌단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던가. 바위나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꽃 색깔과 모양이 똑같아 전문가도 구별하기 쉽지 않다. 꽃 피는 시기도 같아, 수피를 보고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 산수유는 수피가 거칠지만 생강나무는 매끈매끈하다. 둘은 아주 다르다. 한 번만 보면 절대 혼동할 수 없다. 돌단풍의 다른 이름이 바위나리일 뿐, 나리꽃은 아니다. 꽃 모양이 달라도 완전히 다르다. 전혀 나리꽃으로 착각할 수 없다.


바위나리꽃을 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전이었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에 나오는 바위나리꽃을 나리꽃으로 그린 게 아닌가. 표지와 삽화 모두. 아무리 읽어봐도 나리꽃으로 묘사된 장면이 없는데. 바위나리를 나리꽃으로 잘못 안 것일까. 알면서도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렇게 그린 걸까.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잘못 알았다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알려줘야 할 텐데. 그러나 이미 출판돼 나온 책을 수정할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재판을 찍게 될 경우 수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는 그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다. 바위나리꽃을 나리꽃으로 인지할 것이 분명하다. 나리꽃과 달라도 현저히 다른 돌단풍꽃인데. 어린이들이 자라서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출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묵과한 사회를 불신하게 될 수 있다. 그것을 유추하는 나는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며칠 고민했다. 지엽적인 것인데 꼭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까. 나는 왜 작은 것에 연연하는가. 하지만 나는 동화작가 아닌가. 어린이들의 정서와 학습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 그냥 있을 수 없다. 말한다고 달라질까. 부질없는 짓일지 몰라. 갖가지 생각들이 나를 에워쌌다. 더구나 그 출판사는 어린이에게 좋은 책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전화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수정하는 게 좋겠다고. 바위나리는 나리꽃이 아니고 돌단풍이라고. 직원은 알려줘서 고맙다고 정중하게 답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꽃도 실은 생강나무에 피는 생강꽃인데, 동백꽃으로도 불린다고. 초기에 나온 그 작품 표지에 생강꽃이 아닌 동백꽃으로 그려진 것도 잘못이라고. 사례까지 들어 말했다. 한 번 출간되면 수정이 어려울 거라며, 앞으로는 돌단풍으로 그려 넣기 바란다고 말했다. 직원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것이 수정되었는지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알렸으면 되지 확인까지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이십 년쯤 전의 일이었으나, 혹시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놀랍고 황당했다. 그 출판사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에도 모두 나리꽃으로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어느 책은 아주 형형색색의 나리꽃이 화려했다. 바위나리가 아닌 나리꽃이 어린이들의 기억에 더 확실하게 각인될 것 같다.


물론 예술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작되는 소산물이다. 그 동화를 읽고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을 수 있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개운하지 않다. 어린이들이 바위나리 그 소박하면서도 앙증맞은 꽃을 알지 못할 것 같다. 아기별처럼 반짝거리는 작고 귀여운 꽃을. 모양은 바위나리꽃으로 하되, 색깔을 형형색색으로 하여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넓힐 수 있게 했다면 어떨까. 못내 아쉽다. 처음 나온 책의 잘못된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린 게 아쉬울 따름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오류가 있는지, 있다는 것을 알면 속히 수정해야 한다. 잡지에 발표했거나 책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이 오타나 띄어쓰기, 비문 등 오류다. 전체적인 것이야 몇 번을 보고 퇴고했기 때문에 크게 잘못될 것이 없는데, 지엽적인 부분의 잘못은 자주 발견되곤 한다.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도 꼭 오류가 몇 개씩 나온다. 오류는 인쇄물의 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만큼 완벽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에 어디 그리 완벽한 게 있을까. 모든 게 그렇긴 하다. 돌단풍을 볼 때마다 그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한 번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어렵다는 것도. 그러니 애초에 모두 바로잡아한다. 세상에 바로잡을 게 그뿐이겠는가. 숱하게 많다. 비뚤어진 성격도, 언어습관도, 낭비벽도, 지나친 모든 것도, 무분별한 외국문화의 유입도, 교육과 정치 현실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아, 모든 출판사에 전화해서 일일이 알려줘야 할까. 나는 왜 이다지 작은 것에 연연할까. 따지고 보면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일인데.


아파트 정원에 핀 돌단풍꽃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봄바람에 별처럼 작은 꽃잎을 흔든다. 내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책 속에서 어떻게 그려졌든 그 바위나리니까 괜찮다는 듯. 바로잡아야 할 것이 그것뿐이겠냐는 듯.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 나의 잘못된 것들이나 먼저 바로잡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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