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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n 16. 2023

글쓰기, 피로감과 행복감의 틈

꾸준히 써야 한다

  

요즘 글쓰기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저 한번쯤 몰입해보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럴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건 글쓰기였다. 그래도 내가 할 만한 것이어야 하니까. 글쓰기를 시작한 지 9개월이 좀 넘은 듯하다. 거의 매일 아침에 2,500자 내외의 글을 썼고 브런치에 발행했다. 완성도 여부를 떠나. 그런데 슬슬 피로감을 느낀다. 계속할 것인가, 잠시 멈출 것인가, 아예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비단 이 일뿐 아니다. 뭐든지 꾸준히 오래 하기 쉽지 않다. 강도 높은 일을 짧게 하는 건 조금 더 쉬울 수 있다. 내 생각이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실제로 그렇지 않은 일도 많으니까. 나는 무엇이든 오랜 시간 꾸준히 한 것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그러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것의 효율성을 따지기 전에. 요즘엔 가끔 그러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피아노 교습을 받을 때였다.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바이엘에서 체르니 100번까지 재밌게 배웠다. 워낙 배우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게 좋은 여건으로 전환되었다. 그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드물 것이다. 체르니 100번이 끝나고 웬만한 곡은 칠 수 있게 되었다. 또 중급에 해당하는 체르니 30번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재밌고 행복했던 피아노 교습에 피로감을 느꼈다. 어지간한 곡은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핵심은 피로감이다. 결국 간신히 조금 더 배운 후 그만두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피아노 교습에 피로감을 느껴 그만두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 행복했던 것을. 그게 지금도 아쉽다. 물론 그때 배운 피아노 실력을 바탕으로, 26년 동안 교회 피아노 반주자로 있었다. 


가끔 피아노를 더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들라면, ‘꾸준히 하는 것’인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그만두었다. 더 배웠더라면 쇼팽이나 베토벤 연주곡을 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지금이라도 더 배워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 있다. 막상 발을 내딛기 쉽지 않다. 그만두는 건 순간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글쓰기는 좀 다르긴 하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쓸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무엇이든 동력이 떨어지면 쉽지 않다. 그 동력은 내 속에 있는 에너지를 발현시키는 어떤 힘이라고 본다. 글을 쓰게 하는 계기일 수 있는데, 그건 글 쓰는 사람 스스로가 도출해야 한다. 즐거움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아픔일 수도, 표현욕구일 수도, 그 외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멈추게 되면 그 동력까지 멈추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게 염려된다. 그것 또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십 년 전, 이삼 일에 한 편씩 글을 쓰던 날이 있었다. 그걸 거의 십 년 가까이 계속했는데, 어느 날 어떤 일을 계기로 멈추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으니 써지지도 않았다. 물론 그때는 필요한 논문이나 서평 등을 썼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 뿐. 그 후 다시 동력을 얻은 건 출간한 책 한 권 덕분이었다. 그 전에도 냈지만 그간에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이다. 그러나 퇴직 막바지여서 마음이 분주했고 일도 많았다.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건 퇴직 후였다. 


1년 동안 매일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9개월이 넘었다. 거의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 공저로 출간하는 책에 수록하거나 문학지에 발표하느라 삭제한 글 몇 편이 있지만, 대부분 매일 한 편씩 글을 새로 써서 브런치에 발행했다. 물론 날 것들이다. 완성도 면에서 떨어지는 글이다. 시간을 두고 퇴고할 것이다. 9개월 좀 넘는 동안 280편을 발행했으니 다작이다. 그 중에 다섯 편 정도만 예전에 썼던 것을 다듬거나 수록된 작품을 올린 것이다. 그러니 많이 쓴 편이다. 


문제는 글쓰기에 몰입하려던 단 하나의 목적이 흔들리는 것이다. 3개월만 더 하면 되는데.  피로감을 느낀다. 연초에 스스로 약속한 게 있다. 그건 어쨌든 무조건 쓰겠다는 것이었다. 피로감을 느끼면서, 자구책으로 에세이만 쓰던 것에서 변화를 주어, 시와 엽편소설 콩트 등을 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오는 건 왜일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일까. 이것도 내성이 생겨서. 


피아노 교습을 그만둔 날을 후회하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 마음을 다잡으며 글쓰기 피로감을 해소하려 애쓴다. 또 이렇게 공표함으로써 새로운 동력을 얻고자 한다. 물론 행복한 일임에도 그런 때가 있다는 걸 안다. 인정. 나는 피로감과 행복감 틈에서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걸 이겨내는 것이라고 최면을 걸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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