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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29. 2023

까다로움과 예민함 사이

글쓰는 이에게 있어야 할 것

  

나는 보기와 달리 까다로운 면이 있다. 예민하고 섬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기와 달리, 그래, 보기와 달리다. 내 외모는 너그럽게 생겼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란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으니까. 나이 먹어가며 자주 들은 말도 인상 좋다는 거였다. 딸이 말하기를, 그건 그냥 안 예쁜 사람에게 쓰는 말이란다. 꼭 그렇게 허를 찔러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예민하고 섬세하다. 


나 같은 사람에겐 이상하게 거슬리는 게 많다. 음식점에 가도 설거지 덜된 숟가락이나 앞 접시가 꼭 내 차지가 된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바꿔달라고 하면 함께 간 사람이 까탈 부린다며 웃는다. 까탈이 아니고 설거지가 덜 되었다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앞에 놓인 접시를 본다. 왜 그게 꼭 내 눈에만 띄는 걸까. 그것이 까다로운 건 아닐 터다. 


얼마 전에 홈쇼핑에서 블라우스를 샀다. 네 개를 한꺼번에 주는데 디자인과 색깔이 모두 달랐다. 이틀 후 배달되었다. 하나 펼쳐서 입으려고 보니 소매 끝에 천이 구멍 나 있었다. 바느질이 덜 된 거라면 손질해 입을 수 있겠으나, 구멍이 났으니 입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반품했다. 누가 전에 내게 말했다. 까다로운 사람에게는 뭐가 눈에 잘 띄는 법이라고. 이건 까다롭고 말고  아니지 않은가. 


어릴 적에 어머니 따라 마실을 가도 그 집 방바닥이 깨끗하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으면 그제야 어머니가 아시고 치맛자락을 조금 펼쳐 주었다. 그 치맛자락 위에 살포시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그 집 아주머니는 조신하다고 했다. 그러다 어머니께 기대 잠이 들기도 했다. 남의 집에서 음식을 먹게 될 때도 꼭 숟가락 앞뒤를 살핀 다음 먹었다. 숟가락 홈이 파인 곳이 깨끗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그때 시골 사람은 바빠서 그런지, 위생관념이 덜해서 그런지, 그런 일이 흔했다. 어머니는 내게 까다롭다고 했다.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등으로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까다로운 건 어머니의 영향이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을 사도 그대로 입는 적이 없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을 꼭 고쳐 입는다. 솔직히 기성복이 마음에 꼭 드는 경우 흔치 않다. 소매가 약간 길다든지 목이 답답하다든지 뭐라도 마음이 안 드는 부분이 발견되는 게 보통이다. 어머니는 그걸 그냥 못 입는다. 당신이 바느질을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까다롭다. 그러니 내가 까다롭다면 그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 아닐까.


까다로움은 예민함과 결이 닿아 있는 정서다. 그것의 맥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나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게 놀랍다. 아, 이제부터 ‘까다로움’이 아니라 ‘예민함’이라고 하리라. 우리 외할머니도 예민하셨다. 그의 딸인 어머니, 어머니의 딸인 나까지 삼대가 닮았다. 기이한 일이다. 우리 외사촌들은 닮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누구의 말에 의하면 외할머니의 DNA 25%를 외손이 닮는단다. 특히 외손녀가. 맞는 말 같다. 


나는 외손녀가 없다. 나의 DNA 가장 많은 부분을 닮을 수 있는 외손녀가 없다. 딸은 아들 둘을 낳은 후 단산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딸에게 했더니, 글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걸, 했다.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엄마 성격 썩 좋은 거 아니란다. 자긴 아빠 닮아서 다행이라며. 웃고 말았다. 본래 말만 그러지 속 깊은 아이란 것을 아니까. 지금이라도 딸 하나 더 낳으면 어떨까 했더니 눈을 하얗게 흘겼다. 하긴, 요즘 육아와 직장일과 집안일로 동분서주하는 딸을 보며 할 말이 아니다. 신기한 건 외손자 온이도 예민하다. 


어머니의 예민함에 우리 삼 남매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을 못 자고 고민한다. 89세 연세에도 다리만 아플 뿐 정신이 아주 말짱하다. 귀가 잘 들리고 눈치도 백 단이다. 간혹 남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못한다. 그 예민한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것의 본질을 놓고 수없는 마인드맵을 양산해 낼 게 뻔하다. 그러면서 잠도 못 주무시고. 그래서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신경 쓰게 되는 이야기는 못한다. 


어머니의 그런 부분을 내가 닮았다. 아이들이 나와 함께 살 때, 고민거리 생기면 둘이 숙덕거리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면, 엄마가 하도 예민해서 잠 못 자고 고민할까 봐 말을 못 하겠다고 했다. 내가 예민한 것을 아는 아이들은 내가 신경 쓰게 될까 봐 웬만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눈치 못 챌 나는 아니다. 


딸은 나를 닮지 않은 줄 알았다. 감성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성적인 부분이 더 많기에. 하지만 아니었다. 나와 조금이라도 삐걱대는 부분이 있으면 딸은 잠을 못 잔단다. 삐걱대봐야 별 것도 아니다. 의견이 달라 감정이 약간 상했다거나 하는 하찮은 것이다. 모녀지간에 흔히 있는 그 티격태격하는 정도. 그러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그걸 아는 나는 먼저 전화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건다. 아니면 온이 보러 갈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금세 밝은 목소리가 된다. 응, 와. 당장 와!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린다.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 그리고 나와 딸, 4대에 이어진 그 예민함. 아니, 까다로움의 DNA를 안고 우리는 살아간다. 물론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 준 적은 없다. 이제 나이도 먹어가니 조금 무뎌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걸 기대하긴 힘들다. 글 쓰는 사람에게 예민함을 잃어버리는 건 장수에게 칼이 없는 것과 같을 테니까. 그 예민함으로 사물과 상황을 헤집어 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므로. 오히려 더 번득이는 예민함이 요구되는 것 아닐까. 남들은 까다로움이라고 하는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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