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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12. 2023

나는 전략가를 꿈꾼다

글쓰기 전략

    

나는 전략가를 꿈꾼다. 글쓰기 전략가 말이다. 전략을 세우는 데 능한 사람, 전략가. 전략은 전쟁이나 어떤 일을 할 때 쓰는 방법이나 책략을 일컫는다. 우리 삶의 현장이 왕왕 전쟁터로 표현되기는 하나 그건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한 전략이라고나 할까. 그 어떤 일은 내가 쓴 글 읽기에 관한 것이다. 즉 내가 쓴 글을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읽도록 하는, 바로 그. 글쓰기 전략가가 되기를 꿈꾼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게 있다. 가독성이다. 독자들이 흡입력 있게 읽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라도 가독성이 없으면 흥미가 떨어진다. 흥미가 떨어진 글은 끝까지 읽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내용이 알차더라도 공감할 수 없고, 공감이 없으므로 감동도 없다. 그러므로 가독성은 글쓰기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독성 있는 글을 쓰려면 단문으로 써야 한다. 나는 한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담는 단문 쓰기를 원칙으로 한다. 중문은 문장이 길고,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더라도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중문으로 쓰게 될 경우에는 쉼표를 사용해 단문처럼 읽히도록 하는 효과를 연출한다. 글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내용의 이해인데, 그것이 안 된다면 다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이라는 것이, 공감과 감동이다. 내용이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나는 단문으로 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이 모두 단문으로 되어 있다면 읽을 때 호흡이 가빠질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중문을 쓰기도 한다. 산책할 때 느릿느릿 걷다가 때로는 성큼성큼 걷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길가에 핀 들꽃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흐르는 물을 보며 삶의 철학을 떠올리며, 스치는 바람에서 계절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처럼, 박진감과 느긋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쓴다. 단문과 중문이 적절하게 섞여 내가 의도한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노력한다.


그것이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독자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이 한 쾌에 읽었다는 둥, 눈을 뗄 수 없었다는 둥, 정류장에서 읽다 차를 놓쳤다는 둥, 조금씩 읽으려고 했는데 한 권을 그냥 읽고 말았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앗싸! 됐어!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혼자 외친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한 권의 책이라 해도 그렇게 읽히도록 쓰는 게 내 전략이다.


물론 이것은 산문에 관한 것이다. 운문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운문의 특성 중 하나가 ‘애매성’이므로 가독성 있게 읽히긴 어렵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의도를 알 수 있고, 시를 이해할 수 있다. 산문은 그 특성상 ‘논리성’을 갖는 글쓰기이므로 애매성을 담보로 할 수 없다. 문장만큼은 그렇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또 진부하게 쓰지 않으려고 독창적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겠고. 아무튼 산문은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글의 모순이 생기면 가독성을 갖기 어렵다.


읽게 만드는 글이 되기 위해 간혹 진부한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여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것도 내가 쓰는 작전 중의 하나다. 이게 뭐지? 이런 이야기일 거야. 아니 다를 수 있겠는데 뭘까? 독자들이 스스로 우상을 창조해 가도록 해서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무너질 때 웃음이 유발되고 허탈해지는 것을 통해, 카타르시스 효과가 발생되는 것을 노린다.


잘 읽히는 글이라고 해서 내용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보를 담고 있는 글이나 논문이라 해도, 나는 가독성 있게 쓰는 걸 원칙으로 한다. 현학적으로 쓰는 글을 피한다. 그렇다고 정보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관습적으로 어렵게 쓰는 것 같다. 어렵게 써야 연구한 결과가 빛나는 것일까. 논문도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글인데 말이다.  


어떤 제품을 사고 그 사용설명서를 읽을 때, 나는 자주 좌절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알리는 글을 볼 때, 정확한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다시피 한 나인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두 가독성에 문제가 있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한 번은 지인이 내게 문자를 보냈다. 병원에서 온 문자인데 내용 파악이 안 된다며 전문을 보내왔다. 읽고 내용을 알려달란다. 그 지인은 언어학자였다. 그런 문자를 사람들이 어떻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모두 가독성의 문제다.


글쓰기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 도구 중 하나다. 작가가 글을 매개로 독자와 하는. 그 소통이 잘되도록 하려면 글을 잘 읽히도록 써야 한다. 그러려면 쉽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들려주는 것은 재미없다. 그래서 가끔 독자를 속여 넘기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모두 내 글을 읽게 만드는 전략이다. 속았다는 말을 할 때 나는 속으로 또 쾌재를 부른다. 독자를 속여 넘기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 난 악취미를 가졌나.


아무튼 내 글을 독자가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게, 내 글쓰기 전략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 한 사람만 있어도 난 희망이 보인다고 믿는다. 이 재미없는 글을 누가 읽으랴 싶기 때문이다. 그래도 꿈은 꿈이니까. 나는 전략가를 꿈꾼다, 글쓰기 전략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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