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는 잘 웃는 편이다. 강의도 늘 웃으면서 한다. 미대생들이 내 강의를 들었을 때였다. 스승의 날이라고 캐리커처를 그려준 아이들 몇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모두 웃는 모습이었다. 물었다, 내가 잘 웃느냐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렇단다. 찡그린 것보다 낫긴 하는데, 잘 웃다 보니 눈가에 주름이 잘 잡히는 것 같다. 그럴 정도로 잘 웃는 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까. 그쯤이었다. 작은집에 갔는데 작은할머니가 두부를 하려고 불린 콩을 맷돌로 갈고 계셨다. 맷돌에 갈린 콩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왜 그리 우습던지, 사촌동생과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작은할머니는 영문을 몰라 왜 웃느냐고 물으셨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엔 너무 시답잖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기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
우리가 하도 웃어대니까, 작은할머니는 웃지만 말고 콩을 갈아보라셨다. 우리는 얼씨구나 마주 앉아 맷돌을 돌렸다. 몇 번 해보니 팔이 아팠다. 그래도 콩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우스워서 배꼽을 쥐고 웃었다. 웃느라 맷돌을 돌리지 못할 정도였다. 작은할머니가 거참 이상도 하다. 무엇이 그리 우스워 그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우습니, 하셨다.
그 말이 우스워서 우리는 또 배꼽을 쥐고 뒹굴었다. 콩을 갈아야 한다는 것도 잊고 마루에서 뒹굴며 웃기만 했다. 작은할머니는 어이없어하시면서도 우리를 따라 웃었다. 웃음은 그렇게 전염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웃고 나니 눈물이 나왔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웃음이 진정될 조짐이 보였다. 꺽꺽하며 웃음을 삼킬 정도였으니까. 이제 잠시 후면 웃음이 멎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불현듯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그 구름이 또 문제였다. 팔을 벌린 것도 같고, 쪼그려 앉은 것도 같으며, 입을 벌린 것도 같은 모양의 구름들이. 웃음이 또 터졌다. 내가 구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웃기 시작하자, 사촌도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웃어댔다. 우리 둘은 구름이 변해가는 모습이 우스워서 계속 웃었다. 배가 아플 정도였다. 작은할머니가 그만 웃으라고, 웃다가 숨 막힌 아이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마루에 나란히 누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콩 가는 것을 잊을 채.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로 시작되는 동요였다. 바람이 산들 불었고 마당 한쪽 꽃밭에는 과꽃이 빨갛게 피어나고 있었다. 과꽃에 눈길이 머물자,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로 시작되는 동요를 불렀다.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열두세 살의 소녀들이었다.
작은할머니는 우리에게 콩 가는 것 시키기를 포기하셨다. 혼자서 한 손으로 돌리며 불린 콩을 국자로 맷돌 아가리에 넣었다. 입을 꾹 다물고 맷돌 돌리는 모습에, 사촌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깔깔깔 웃었다. 작은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헛웃음을 쿡 웃고 여전히 맷돌을 돌리셨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또 웃었다. 간신히 진정될 듯 진정될 듯했던 웃음이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다시 시작되고 또 시작되었다.
그렇게 놀다가 작은할머니가 두부 만드는 것을 도왔다. 아궁이에 불을 땠고, 콩물 짜는 자루를 잡아드렸으며, 간수를 넣고 두부가 엉기는 장면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또 웃고 작은할머니가 그만 웃으라고 침 튀긴다고 해도 우리는 웃어댔다. 그렇게 만든 두부를 먹으며 웃었고, 먹고 나서 설거지하며 웃었다.
사촌동생과 나는 동갑이었다. 생일이 한 달 늦어 내가 언니다. 한 번도 언니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이름을 부른 적도 없다. 이름 부르면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었으니까. 한 달 아래여도 나는 언니처럼 군 것 같긴 하다. 나물 뜯으러 가도 나물이 많은 곳을 발견하면 사촌동생을 불러 뜯게 했으니까. 그 동생이나 나나 그때는 왜 그리 웃음이 많았는지 모른다. 어릴 적엔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랬던 내가 청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어느 시기까지는 웃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게 심드렁했고 쓸데없이 진지했다. 아마 내가 짊어지고 있는 장녀의 무게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또 열일곱 살부터 시작한 객지 삶이 만만하지 않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내 꿈을 이루기가 너무 요원하다는 암담함 때문에 더욱 웃지 못했던 것 같다. 웃는 게 다 무언가.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워 늘 찡그렸다. 함께 지낸 고모에게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인상 좀 펴보라고.
웃음을 되찾게 된 것은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면서부터인 듯하다. 아니, 잊었던 꿈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한 웃을 수 있는 거니까. 누군가가 말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고. 그 말은 한동안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 후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왔을 때도 웃었다. 그런 나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날들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웃었다. 물론 우는 날도 많았다. 우는 것은 가족들 몰래 혼자 울었다. 웃음과 울음은 쌍둥이 같은 것일까. 그렇게 울다가도 웃게 되고 웃음이 선을 넘을 넘으면 울음이 나왔다. 어렸을 적에 웃다가 눈물이 났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잘 웃는다. 강의를 웃으며 하고, 말도 웃으며 한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하하하 웃는 소리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 옛일이 되어버린 슬픈 이야기도 웃으며 한다. 그러다 울기도 하지만. 올해는 더 많이 웃어야겠다.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할 정도만 아니게 웃고 살아야겠다. 열두세 살 소녀 적 그때, 참을 수 없이 웃어대던 그날처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자꾸 웃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