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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y 27. 2023

술주정

자유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대낮부터 마시고

그것도 늙은 여자가 마시고, 생전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저녁나절 비틀비틀

인동덩굴처럼 몸을 비틀며 걷다가, 구운 오징어처럼

온몸으로 용을 쓰며 걷다가

터져 나오는 울음 끝에 낄낄 웃다가

또 꺼억꺼억 울다가

남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없이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광녀처럼 하늘을 보며 그립다고 말하다가

찔레꽃 따먹는 직박구리에게

내 마음 모른다고 푸념하다가

세상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가버린

사람을 원망하다가 길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아도 부끄럽지 않았다   

   

폭폭한 가슴이 말라 바스러질지도 모르는데

마음이 시리다 못해 얼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세상 어떤 좋다는 것과 바꿀 수 없는 슬픔인데  

이승과 저승 그 끝 간 곳 모를 간극을 어쩌란 말인가

술주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군말 : 시 속의 화자와 시인 자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필은 작가 자신이지만요. 독자가 어떻게 감상하든 자유겠지만, 누군가를 지켜보며, 술주정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쓴 시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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