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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11. 2024

구절초 꽃

   

그날 아침 산책길을 잊지 못한다. 특히 이맘때쯤이면 꼭 떠오른다. 오늘처럼 하늘은 맑았고 높았다.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내 머리 위에 맴돌았고, 들판엔 곡식이 여물어갔으며, 벚나무 단풍이 불그레해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산책에 나서는 건 여행지에서 하는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동료들 몇이 안동에 갔던 몇 년 전 일이다. 몇 번 다녀온 적 있었지만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을 하루에 보는 정도였고, 묵어 온 적은 없었다. 천천히 느릿느릿 유유자적 즐기는 건 어떠냐는 한 동료의 말에 몇이 의기투합했고, 싫다는 나를 억지로 끼워 넣어 합류하게 된 3박 4일 일정 여행이었다. 여행 중에는 늘 자리덧을 하느라 잠을 설쳐 새벽에 일찍 깨는 습성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옆 침대에 잠든 동료가 깰세라 조용히 일어나 스웨터를 걸치고 방에서 나왔다. 


어둑했던 날은 뒷산 산책로로 접어들었을 때, 벌써 훤히 밝아왔고 동쪽하늘엔 해가 솟아나고 있었다. 잠시 서서 해맞이하며 심호흡했다. 개운하지 않았던 머리가 햇살처럼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네의자에 앉아 무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세 퍼지는 따사로운 가을볕, 낯선 여행지의 생경한 풍경들,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대며 가슴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라고 표현한 그것의 실마리를 모르지 않는다. 단지 표현하기 저어 되어 쓴 문장일 뿐이다. 내가 글 쓰면서 경계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그 ‘알 수 없는’이라는 표현이다. 작가는 ‘알 수 없는’ 게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구체화시키고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구체화해서 숨은 감정까지 헤집고 싶지 않을 때다. 그게 아프거나 불편한 거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동료들끼리 의기투합했다곤 하나 나는 그렇지 않았고, 동료들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나선 길이었다. 그때 나는 몇 년째 소중한 사람과 한 사별의 아픈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우는 게 지치면 잠을 청했고, 그것도 지치면 가파른 산에 올라 남은 힘을 다 빼고 비워냈다. 그런 나의 상황을 아는 동료들이 성화하며 끌고 가다시피 간 여행이었다.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복잡하고 아픈 감정들이 시도 때도 올라와 곤혹스러웠다.


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게 없어, 한없이 늘어지는 무기력한 육체와 정신을 곧추세우느라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축적돼 있는 지식과 지혜가 무용했고,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끝없이 타고 오르는 줄은 금세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산다는 게 이다지도 힘든 걸까 싶어, 몇 번이나 자신감을 잃고 허우적댔다. 인간이기에,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렇다고, 스스로 위무하며 지새운 밤도 숱하게 많았다.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간 여행이니 썩 즐겁진 않았다. 하지만 나를 세상에 노출시키는 건 그 어둡고 축축한 감정에서 헤어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료들이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게다. 또 한 가지는 운전. 운전을 즐기는 편인 나와 달리 동료들 중에는 좋아하거나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합류하지 않았으면 여행이 무산되었을지도 모른다.


햇살을 받으며 산등성이로 오르는데 저만큼에 정자가 보였다. 정자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도 없는 산자락에서. 앞뒤 좌우 옆 모두 구절초 군락지였다. 연보라색 구절초 세상이었다. 그윽한 꽃향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몰입이었다. 상실로 인한 아픔과 무력감이 몇 년 동안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비틀어 묶어놓아, 무엇에도 몰입할 수 없었다. 간신히, 간신히, 주어진 하루의 일과만 소화하는 게 살아있다는 표현이었다. 


꽃이 위로가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코 대고 향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구절초 향기가 울컥 대는 가슴을 가만가만 만져주었다.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 안에서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울기도 했다. 눈물만 흘리다가 흐느꼈다. 소리도 냈다. 이슬 머금은 구절초 꽃이 내 얼굴을 어루만져주었고, 소슬바람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비둘기 소리처럼 내 울음도 드문드문 계속되다 잦아들었다. 일어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정자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절초, 고추잠자리, 비둘기, 소슬바람이 나를 둘러쌌다. 그래, 맑은 가슴으로 살아보자. 깨끗하고 향기롭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만히 다독였다. 구절초 동산에서 내려올 때, 울컥 대던 가슴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오가는 산책자들과 마주쳤을 때, 가볍게 목례하며 미소 지을 수도 있었다. 구절초 꽃과 자연이 위로가 되는 날이었다. 


지금쯤 그곳엔 여전히 구절초가 지천으로 피었으리라. 눈을 감으면 연보랏빛 구절초 꽃이 소슬바람에 한들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언젠가 가서 구절초 꽃을 다시 만나고 싶다.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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