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 말을 기억할 의무가 있나요?
카톡, 쉽게 볼 일 아니다
L선생이 전화를 했다. 웬만해서 그럴 일이 없을 정도로 거리가 있는 사람. 그 단톡방은 유일하게 공지사항과 의견만 올리는 곳이다. 회원들 모두 그만큼 바쁘다. 하나의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모임이다. 그렇다고 메마른 공간은 아니다. 몇몇은 친구처럼 가깝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 회원도 있지만. 아무튼.
대뜸 묻는다.
“이번 금요일 거기 가는 거 맞죠?”
“거기요? 아뇨. 목요일인데요.”
“금요일이잖아요. 저는 금요일에 간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 날짜가 돼도 아무도 말이 없어서요. 단체로 움직이지 않고, 개별적으로 행동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저는 목요일에 가려고요.”
“어머! 왜 저한테 말 안 해주셨어요?”
“지금 말하잖아요.”
“그래도 미리 말해줘야죠.”
“나는 금요일 시간이 안 돼서 목요일에 가는 건데요.”
말해주지 않은 이유를 물으며 투덜투덜. 내가 총무나 회장이 아니다. 난 그저 회원일 뿐이다. 그리고 공지사항이 올라왔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어, 나는 개별 행동을 하기로 했다. 꼭 같이 갈 장소도 아니었다. 시간 되고 원하는 사람이 가면 되는 곳이다.
듣고 있자니 불쾌해졌다. 나이를 따지고자 하는 건 아니나 나보다 15년이나 아래고, 대학원 다닐 때, 내 강의를 듣기도 한 사람이다. 선생에 대한 예의로도 그래서는 안 되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게 거슬렸다.
“내가 L선생에게 내 개인적인 일정까지 말할 필요 있나요? 왜 내게 책임 추궁하듯 그러죠?”
“아니, 제가 카톡에 쓴 말 안 읽으셨어요?”
“네, 일일이 회원들이 하는 말 다 기억 못 해요. 공지 아니면 안 읽기도 하고요.”
“그래도, 왜 제게 말 안 하고 진행하세요?”
끝이 없다. 그녀의 끈질김에 머리가 아파왔다. 자꾸 왜 자기에게만 말을 안 했느냐고 추궁한다. 도대체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답답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예전에는 시끄러운 게 싫어 웬만하면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갔는데, 이건 다른 문제다.
“아니, 글쎄. 내가 남의 톡을 면밀히 읽고 기억해야 하느냐고요. 지금 운전 중입니다.”
그래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이제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는데, 최대한 품위를 유지하며 따졌다.
“모든 사람이 L선생이 한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나요? 정 궁금했으면 톡방에 확인 문자 올릴 수 있잖아요. 아무도 말이 없어 개인행동하는 건데, 왜 내게 끝까지 그래요? 나는 당신이 한 말을 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카톡방에 올라온 짧은 문자는. 의견 조율이나 꼭 필요한 것 아니고는 읽지 않을 때도 있어요. 됐나요? 그렇게 됐느냐고 하면 될 걸, 이렇게 잡고 늘어지는 게 무슨 이유죠?”
다다다닥. 속사포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움찔한 듯했다. 약간 침묵하더니 다시 말했다.
“죄송해요. 그래도 그렇지 왜 말을 않고…….”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그녀에게 그만 말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속에서 우르르 화가 일었다. 워 워,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경쾌한 음악을 넣었다. 그래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중얼중얼 화를 뱉어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까. 상황이 달라지면 거기에 맞게 행동하면 될 것인데, 그것을 아무런 책임도 없는 누군가에게 추궁한다는 게 맞는 걸까. 다시 또 마음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좀 가라앉자 문제의 원인을 생각했다. 카톡이 문제였다. 존재를 너무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카톡이. 그러나 한시 반시도 카톡 없이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다. 간 때문이 아니라 카톡 때문이다. 거기에 올라오는 문자를 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쓰는 사람은 분명한 의견인데, 읽는 사람은 별 의미 없이 읽어버리거나 아예 읽지도 않는 글이 되어버리니.
L선생도 함께 가고 싶은데 아쉬워서 그랬으리라. 그게 지나쳐 내게 추궁하는 것처럼 비쳤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