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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09. 2024

여의도 벚꽃 구경

[연재] 56. 이혼 32일 차

56. 이혼 32일 차,      


     

여의도 벚꽃 구경     


2014년 4월 1일 맑음      


  새벽 3시 40분.

  잠실 사거리에 사내놈 셋이 스쿠터를 세우고 킬킬거리며 떠드는 소리에 “씨발놈들아, 조용히 해라!”라고 소리 질렀는데, 술 처먹은 놈 귓구멍에 들릴 리가 없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놈 셋이서 이죽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래, 다들 정신 차리고 살면 경쟁자만 늘어나는 법이지.’     


  혼잣말하며 욕실로 들어가 샤워하고 수요일 스터디 과목 중 ‘동서양 고전의 이해’를 발표해야 하기에, 동영상 시청을 시작했다. 늦어도 오늘 저녁 시간까지 자료를 스터디 카페에 업로드해야 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아침 해가 떴다.     



  6시가 조금 못 되어, 앞을 막고 있는 자동차를 이동하게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유는 아침도 얻어먹고, 운 좋으면 여자의 가슴에 파묻혀 섹스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긴 머리카락을 반쯤 잘랐다.      


  “냉이 많이 나와 산부인과를 갔는데 관계한 적 있느냐고 물어서 없다고 했더니 항문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어 엄청, 당황했어요~”     


 산부인과 무용담에 웃음이 터졌다.라고 말한다. 주로 딸아이 때문에 웃는데, 학교 학습 분위기 또한 활기찬 이유였다. 그러는 사이 여자가 쌉싸름한 민들레무침 식탁에 내왔다. 그가 뒤로 가서 젖가슴을 주물렀다.     


  새벽 일찍 일어난 탓에 식사 후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 여자를 불렀다. 이에, 여자가 침대로 왔고 “당신이 넣어봐라.”라고 하자 싫다고 하더니 이내 애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침대 머리에 기댄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 삽입했다. 그렇게 따뜻한 속살의 느낌이 전해지자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대로 두 시간쯤 잠을 자고 일어나 말했다.      


  “올 때 보니 벚꽃이 활짝 피었더라. 벚꽃 구경이나 갈래?”     


  여자가 옷을 입었고, 이탈리안 레드 벤츠 SLK 로드스터는 지붕을 열고 여의도 운중로를 달렸다. 많은 이들이 쳐다보았다. 그는 ‘이 거리에 이런 차가 있어 줘야 그림이 되는 거야’라며 우쭐거리며 작은 벚꽃 나무 거리를 지나 유턴해 더 달리기로 했다. 하지만 신호가 없기에 마포대교를 건넜고, 애오개역을 지나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주행이었다.     


  중년의 남녀들이 죄다 등산복을 입고 여의도로 집결했다. 관광버스에서도 김밥 옆구리 터진 듯 사람을 밀어냈는데, 의사당 쪽 벚꽃길은 나무들이 오래되었고 꽃은 더 탐스러웠다.      


  “사진이나 찍어줄까?”


   그가 말하자 여자는 “기분이 별로일 때는 사진도 잘 나오지 않더라”라며 사양했다.      



  정오가 다가오자 태양 빛이 따가워 지붕을 닫았다.    

  

  “회나 먹으러 가자!”     


  방배동 횟집을 떠올리며 메뉴를 말했더니 “노량진에서 먹고 가!”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왔고 삐끼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주 한적한 점포에 다다랐다. [순천상회]라는 간판의 주인장이 수족관에서 도다리를 퍼 올리며 “키로에 4만 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거 몇 킬로요?”

  “4만 5천 원 나오네요.”

  “참치 한 덩어리 하고 해서 4만 5천 원이면 안될까요?”

  “참치, 조금 서비스드릴 게요.”   

  

  오늘 참치 물량이 많았는지 횟집마다 만 원짜리 덩어리들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었다. [순천상회] 주인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도다리의 뼈와 살을 분리해 냈다.     


  두 사람은 주인장이 안내한 상차림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회 한 점을 입에 넣은 여자가 “쫄깃쫄깃하네~”라고 평가했다. 이에, 그가 “그게 사체경직이라는 거야. 살아 있는 녀석이 죽으면 근육이 굳어. 그래서 딱딱한 것을 한국 사람들은 쫄깃하다고 먹어. 에이그.”라고 말했는데, 횟감의 목을 치고 피를 뺀 다음 서너 시간을 두어 굳은 근육이 풀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근육이 굳은 회를 ‘싱싱하다’라며 먹었다. 어찌 보면 죽은 놈 잡아 놓은 싼 접시의 회가 더 맛있는데도 말이다.      


  “이거, 일식집보다 더 비싸다.”     


  그가 회를 먹으면서 단가를 계산했는데, 매운탕까지 끓여 먹어 65,000원이 나왔다. 그리고 [수산시장]을 나서며 주차비 3,000원이 추가되었다.      



  “벚꽃 구경에 맛있는 도다리 회까지 고마워!”     


  여자의 인사를 뒤로하고 빌딩으로 돌아왔다. 한 소장이 “(지하실) 목공은 끝났습니다. 내일부터 페인트입니다”라며 퇴근을 알릴 때도 이때였다. “알겠어!”라고 대답하고 마트로 가서 생필품을 구매하고 배달을 부탁한 후 롯데마트에 들러 드라이 진과 토닉워터를 집었다.      


  고시텔에서 ‘한 달만 살겠다’라며 입주한 프로야구 선수와 302호의 아가씨가 퇴실을 알려왔다. 이로써 공실이 급격하게 늘어났기에 304호 창문으로 현수막을 걸었다. 그가 ‘주업을 게을리한 결과가 아닌가’라고 반성하며 책상 주변을 정리하고 샤워 후 스터디 발제 준비에 돌입했다. 방의 전등 밝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느낄 때도 이때였다. 공업용 스탠드 배선을 연결해 보조 전등을 만들고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두 마쳤을 때는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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