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나

by 김운용

누 나(1973년)

박춘석 작사 작곡

남 진 노 래



어릴때 업어주던 누나의 모습

따뜻한 사랑에 취해서 잤지

누나야 누나야 우리 누나야

웃음을 안겨주고 시름을 달래주던

누나야 누나야 우리 누나야


어릴때 놀아주던 누나의 모습

콧노래 들으면서 살며시 잤지

누나야 누나야 우리 누나야

웃음을 안겨주고 시름을 달래주던

누나야 누나야 우리 누나야



누나가 두 분이 있습니다. 열살이상 차이나는 큰누나와 바로 세살 위 작은누나.


형제들도 많은데다 형제간 나이차도 많아서

어릴때 우리 큰누난 내게 남진이 부른 노랫말처럼 엄마였습니다.


아버지는 6.25전쟁중 피난짐보따리를 등에다 지고 혹시나 잃어버릴까봐 한손으론 여섯살짜리 어린 큰아들 손 꼭 쥐고,


어머닌 뱃속에 아기를 가져 만삭의 무겁고 힘겨운 몸을 이끌고


한걸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가고자 동해바다 찬바람을 맞으며 천리먼길 피난을 내려오

앞서던 아버지가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불구가 된 아버지는 먼길을 걸을 수가 없어 할 없이 울진이란 곳에 임시로 정착하고 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목재를 만드는 인근 삼판장에 일자리 를 구했습니다.


일제때 북해도로 징용을 끌려나가 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쉽게 감독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손재주 좋은 아버진 목재를 구해다 동료들 과 함께 하루만에 판자집을 지었습니다. 몇일후 만삭이던 어머닌 큰누나를 낳았습니다.


큰누나는 어릴때 업어주고 콧노래 자장가로 젖이 모잘라 목마르고 배고파 칭얼대는 날 사랑으로 달래고 재워준 내겐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큰누나를 아프게 한다면 비록 어린 꼬맹이 작은 손이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세살차이나는 누나가 또 있습니다.


둘째누나라고 불러도 되는데 한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꼭 작은누나라고 불렀습니다.


사춘기를 같이 보내며 다툰적도 많았지만 다른 형제들과는 또다른 정을 많이 느끼게 해준 둘도 없는 친구같은 누나입니다.


추운 겨울날 여고생이던 작은 누나.


새벽 시린 손을 비벼가면서 남동생 아침밥 챙기고 나서도 도시락반찬으로 싸주려고 연탄아궁이 뚜껑 열고 감자조리고 자주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 면 금새 타붙는 불조절하기 힘든 석유곤로 엔 달걀후라이 달랑 한개 올려 놓고 부족한 잠을 참아 가며 지켜보던 모습이 사십년도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세상 그렇게 착할수 없는 순댕이 작은누나 .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수배되었을 때 작은누나는 자기집으로 와있으라며 숨겨주었습 니다. 작은누나는 그때 그 아픈 기억을 글로 써서는 지자체단체장 주최 문예경연장에서 최우수상도 받았습니다.

작은누나는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그려 정작 브런 치에서 글을 써야 할 사람은 나보다 작은누나가 있어야 하는데요.


합격통지서를 받아 자랑하고 싶었는데 뒤로 감추고 동생 대학보내라며 양보하고는

" 엄마 난 괜찮아 "

웃으며 뒷뜰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흐느껴 울던 나의 또 다른 누나. 남은 인생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진이 노래하고 박춘석 작사 곡이지만 트로트보다 는 발라드에 가까운 멜로디와 사랑하는 누나들의 정을 느끼게하는 노랫말이 너무 좋습니다.


남진, 트로트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들어보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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