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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에

by 김운용


토요일, 임꺽정의 전설이 있는 불곡산.


산길을 오르는데 하늘이 너무 깨끗하다.

빠르고 차가운 공기때문에 구름이 생겨날 틈이 없이 아주 맑고 새파란 하늘빛이다.

고개를 들고 하늘 여기저길 둘러봐도 눈구름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지금 하늘로 봐선

오후에 눈이 올거라는 예보가 맞지않을 것 같다.


눈오길 기다리는 일행들이

" 오늘도 눈이 안올까봐."

" 눈 오면 좋겠다."

" 글쎄 오후에 온다 그랬는데요."


구름 한 점없는 새파란 하늘만 보면 아무리 오후라지만 눈이 올것 같지않아서 다들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행여라도 안올까 조바심내듯 어린애들처럼 들떠서 호들갑이다.



올 겨울들어 최강의 한파라더니 생각외로 춥지않아 겨울산행을 대비한 복장이 약간은 거추장스러웠다.


" 바람도 불지않고 기온도 낮지 않아서 일기예보대로 눈이 내릴 수도 있으니 서둘러 올라갔다 내려옵시다."


운전을 해야하는 난 눈내리는걸 일행들처럼 맘 편하게 반길수 많은 없었다.


불곡산은 무리하지않고도 산행을 즐기며 올라갈수 있는 산이다. 산행에 걸리는 시간도 정상까지 두시간이 채 안걸리고 하산까지해도 세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산행을 자주 다니지않는 사람들도 크게 힘이 들지않아 다시 찾고 싶어지는 잘생긴 산이다.

산세는 크지않은데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있어 지루하지않다.

무엇보다도 산아래 넓은 평지와 들판이 펼쳐져있어 탁트인 전망때문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높이는 500m가 채 안되지만 힘이 들만한 위치에 그럴싸한 이름이 붙여진 바위들이 가쁜 숨을 잠시 고르라고 휴식도 준다.


펭귄바위 물개바위 생쥐바위 코끼리바위

악어바위 공룡바위 등 아기자기한 기암괴석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산행객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명소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잡고있어 멀리까지도 살펴볼수있는 넓은 전망때문에

북쪽 들판 멀리서 몰려오는 적들의 침입을 감시했던 보루가 있던 곳이다.


백화암으로 오르는 길입구에서 조금 언덕진 곳에 의적 임꺽정의 생가터가 있다.


고깃뭉치 심부름이나 하며 양반집을 기웃거리던 어린 임꺽정이 자신의 타고난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신분차별이 없는 해방의 세상을 꿈꾸었을만 한 입지로 아주 걸맞은 곳이다.


터져나오는 울분을 삼키고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뢰와 같은 큰소리를 질러댔을 어린 꺽정이는 이 불곡산을 하루에도

몇번이나 오르내렸을것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산꼭대기에 올랐던 울분과 한을 수백년 지나 힐링으로 불곡산을 찾은 내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냐만은 그저 임꺽정이 앉았다는 바위에 기대어 임꺽정이 바라봤을 넓은 들판만 바라볼 뿐이다.




일행이 가져온 커피와 과일등 간식으로 요기를 때우고 능선을 따라 산을 내려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뿌듯하지만 무거운 다리에 힘을 더 주어야만 해 오를때 못지않게 힘이 든다.


아마 그래서 산이 가르쳐주려는 건 인내와 사랑이 아닌가 싶다.


생쥐바위를 지나 전망대같이 너른 바위에 서니 아버지와 아들이 힘겹게 나무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쯤이나 되는 아들이 덩치가 커서 그런지 몹시 힘들어하더니만 바위위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두 손을 잡아주며 일으키고는 생수병을 건네며 안아주었다.

운동하길 싫어하는 아들을 달래어 산을 오른 뒤 힘겨워하는 아들을 안아주는 아빠의 사랑의 마음을 목격한게 오늘 산을 올라오며 본 풍경중 최고로 따뜻한 풍경이라 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계단 중간쯤 내려오는데 이번엔 엄마가 두딸과 난간에 기대서서 먼 산을 가리키며 왜 등산이 좋은지 일러주고 있다.


" 높은데 올라오니 기분 좋지. 산엔 그래서 오는거야."

중학생쯤 되는 두딸은 힘이 들어선지 산행이 좋다는 엄마의 진지한 설명엔 무덤덩한 표정들이다.


세모녀의 사진을 찍어주던 목동에서왔다는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준 후 우리뒤를 따라오며 아들있어봐야 필요없고 딸이 더 좋다며 쉬지않고 수다를 떨어댄다.


수다맨 아저씨가 우리를 지나쳐 간 후 일행 중 후배가 계단 난간에 혼자 기대서 있다가

건너편 산밑을 가리키면서


" 형, 아내가 사는 집이에요. "

후배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멀리 납골당이 보였다.



아내가 있는 납골당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 보일듯 말듯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쓸쓸한 그의 모습을 달래주려는 생각에


" 그래 니 와이프하고 사진한번 찍어주마."


그리고는 말없이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니 일기예보대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산을 오른 이유중 하나는 산행을 통해 칼로리소비를 증가시켜 운동효과를 보려 했던거지만 눈내린 날에 뒷풀이없이 헤어지기엔 내린 눈이 너무 아까워서 후배들과 필름이 끊기도록 마셨다.


술자리 도중에 담배생각이 나 밖으로 나오니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눈이 오니 좋다.

눈이 내려 좋은 건 발밑이 푹신해서 좋고

차도 사람도 다들 빠르지 않고 느리게 다니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모든 걸 눈이 다 덮어주고 가려주니까 그게 젤 좋다.

하얀색 눈엔 아무색이나 다 잘 어울리는데 빨간 우산을 쓰고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걸어가는 젊은 연인의 뒷모습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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