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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서 좋은 사람들
사랑하는 후배 이야기- 수영 편
by
김운용
Aug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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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에 입사해 올해로 만 34년 째다. 쏜살같다는 말처럼 세월 참 빨리도 지나가 버렸다.
한때는 운동선수 못지않은 스피드와 체형을 자랑했는데 지금은 전형적인 아저씨 몸매로 변신 몸매 구분선도 찾기 어려워져 버렸다.
풍성했던 머리 숲은 파란 많았던 34년 그 세월 속에 다 빠져버리고 백발 흑발 다 합쳐도
얼마 남지 않아 빈자리만 여유롭다.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세월은 가고 옛날은 남는 거라 했는데
신체의 변화만으로도 떠날 때라는 걸 느낀 지 오래라 책상을 비우고 자리를 뜨게 되면 곧 잊
혀질 것이다.
나 같은 장삼이사야말로 내세울 만한 공적은 물론 전기를 쓸 유명세도 없지만 살아온 세월 동안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슬프
기도 재밌기도 한 이야기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떠난 후 옛날을 기억해줄 아름다운 후배들이 좋은 사람들이란 책 속에 담긴 자신을 보며 날 잠시나마 기억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성의를 다해야겠기에 한방 삼계탕으로 점심도 같이 먹고 퇴근시간에도 휴게실에서 따로 만나 정식으로 인터뷰도 했다.
수영 후배님. 글쓰기 도와줘서 고마워.
참고로 수영 후배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할 거 같아 보충설명하자면
수영 아빠가 나보다 두 살 많고 수영 엄마는 한 살 적다.
인터뷰하는 동안 무진장 웃었다. 수영 후배 이 친구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소탈하고 유쾌함으로 똘똘 뭉쳐진 보물이다.
본격적으로 수영이 얘길 시작한다.
수영 후배의 약력이다.
1988년 10월 ○○일생이고 부모님이 대전에서 1남 2녀 삼 남매를 낳으셨으니 수영의 고향
도 그래서 대전이다.
초중고를 대전에서 다녔으니까 대학도 대전에서 다닐까 하다 갑자기 In 서울대로 진학을 해버렸다.
In 서울대 중 학교 서열이 많이 밀린다지만 신경 안 쓴다. 수영이는 성시경의 오랜 팬이다. 서울에 살아야 콘서트도 많이보고 시경 오빠처럼 스마트하고 세련된 서울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출신학교가 in seoul 뒷줄에 있든지 간에 전혀 낫씽이란다.
소위 가방끈이 짧은 나 역시 그랬기에 수영이의 이런 당당함이 너무 좋다.
어쨌든 한번 뜻을 세우고 목표를 결정한 만큼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서야 하는 고단한 서울살이쯤은 충분히 각오했다며 목소리에 힘이 빡들어간다.
현재 서울살이 13년 차다.
대학 입학 후 신입생 때는 한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아시다시피 특히 여대 기숙사는 군대나 다름없이 군기도 힘들고 사사건건 통제가 장난 아니란다.
1학년은 부모님께 효도하자며 감옥 같은 기숙사 생활을 꾹 참고 공부에 전념했으나 이학년 올라가면서부터는 독립운동 자금을 만들기 위해 알바 구하기에 전념했다.
여대생 혼자 물가 비싼 서울에서 독립해 생활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지만 수영이는 시경 오빠같이 스마트한 남자 친구도 찾고 오빠의 공연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알바 자리를 찾아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고된 행군을 했다.
부모님께 부담드리지 않고 독립자금을 마련하려니까 서울시내 안 가본데 없이 곳곳에 알바 신청서를 뿌렸다.
학교 알바의 여왕으로 뽑힐 정도로 진짜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대입학원에서 언어영역 보충수업도 해봤고
호텔 주방에서 설거지와 접시도 닦아봤다.
학교 근처 카페는 워낙 인기가 있어 면접에서 탈락하는 쓴맛도 맛보았다.
닭갈비집 서빙으로 눈높이를 낮춰 하향지원
했더니 낼부터 나오라는데.
알바 자리도 빈익빈 부익부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이 비열한 세상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
젠장. 우리 수영이 너무 술 퍼서 친구랑 한잔 했단다.
서울 남자 친구 운운했지만
알바를 많이 한 진짜 이유는 부모님 손 안 빌리고 서울살이에 필요한 생활비의 조달과 미팅 자금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팅 자리도 돈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진짜
미팅
많이 했는데 오랫동안 꿈꾸며 그려왔던 서울 남자 친구들 알고 보니
별로다. 대전이나 서울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어쨌든 수영인 서울 오길 잘했다. 시경 오빠 적당히 닮은 남편이 서울 남자니까.
88년생 우리 수영 후배 학
창 시절 연애사도
독특하다. 남편이 알면 곤란하지 않겠냐
물어보자 잠시의 쉼표도 없이
" 괜찮아요 "
한껏 자유롭고 여유가 있다. 역시 소우 쿨 수영이다.
착하고 순진한 고등학교 동창 미소년과 장거리를 오갔던 설익은 만남이 김수영 연애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남자 친구 그 친구도 아주 헌신적이었다.
수영이가 헬로키티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만날 때마다 호치켓 머리핀 등 헬로키티 캐릭터가 들어간 물건들을 30개씩 상자에 가득히 담아오는 성의가 이뻐서 수영이도
힘들게 야간 과외 등 알바를 해서 게임기도 사줬다고 했다.
순진한 남자 친구는 다시 휴대폰을
수영이한테 선물했다는데 그 얘길 쭉 듣고 있으려니 어른인 나보다 연애 실력들이 좋아 나에게도 혹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고 좀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순진했던 남자 친구 짜식이 취업을 하더니 변심을 하고 딴 여자 친구를 만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를 당겨
" 요 X 식 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 식 끼냐. 잘 먹고 잘살아라. 요 X 식 끼야."
원래는 불러내서 사람 많은 길거리에 세워놓고선 이 시끼 여자 친구 두고 딴 여자랑 바람피운 나쁜 X 싸대기를 불 번쩍나게 갈겨버리려다 착하고 소심한 우리 수영이가 참았단다.
그 후 그 나쁜 식 끼가 찾아와 잘못을 빌며 매달렸지만 깔끔한 수영이가 이젠 굳빠이야 인마 뻥 차 버렸다.
젊은 한때 잠깐이나마 씁쓸한 속앓이 때문에 밥 대신 며칠 동안 알코올 주스만 찾았다는 사랑스러운 후배 수영이 그의 풋사랑 얘기라서 재밌다.
이제부턴 수영이가 운전하는 연애 열차의 종착역인 남편의 순서다.
대학병원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일 때다.
같은 재수학원에 다니던 재수생 동기가 잊을만하면 전화하거나 찾아왔었다.
모닝커피 하라면서 커피 쿠폰을 보내 질 않나, 취업을 축하한다며 밥을 사주기도 하고, 진료 보러 왔다며 갑자기 일하고 있는 병원에 찾아와 놀라게도 만들고
(이 친구 제법 연애할 줄 아는데. 진료가 아닌 수영이를 만나러 왔다는 연애 감각을 보면 성시경을 닮아 세련된 서울 친구가 맞기는 하네)
암튼 끈질기게 찾아와 찐하게 인상을 남기더니 결국 담담하던 수영이도 어느새 얘가 올 때가 됐는데 정이 들어 기다려지더란다.
남편 자랑을 하는 대목에서 수영이의 매력 1번인 눈웃음이 더욱 커졌다.
남편 자랑을 시작하면서 수영이의 예쁜 얼굴과는 어딘가 안 어울리는 듯하지만 두 번째 매력인 너털웃음
도 짓는다.
자기 남편은 늘 비누향 냄새가 풍기고 깔끔하고 똑똑하고 일처리도 확실하다며 자랑거리를 나열하며 숨도 안 쉰다.
특히 운전을 잘한단다. 그중에서도 후진을 너무 멋있게 잘해서 바로 이거야!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단다.
인터뷰 멀었냐며 묻길래 다 끝나간다니까 오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을 보충해야겠다더니 자기는 결코 노는 여자 날라리 꽈가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모범생이었고 자신의 외모 변천사에 대해서도 옛날보다 많이 예뻐졌다며 과거사진 얼마든지 오픈해도 된다며 또 한 번 쿨하다.
글쓰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지켜본 소감을 적는다.
수영이는 해바라기 꽃 같다.
소탈하고 털털하고 언제나 미소를 띤 얼굴이다.
내가 주선한 기타 동아리에도 제일 먼저 참여했고 사회복지사 출신답게 약자를 배려하는 연대와 봉사정신이 뚜렷한 친구다.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좋고 웃는 얼굴에다가 뛰어난 미모까지, 옷 입는 것도 아주 세련된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런데 주로 애용하는 패션이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다.
모든 일에 앞장서진 않지만 그렇다고 뒤로 빼거나 잔머리 굴리며 요령 부리지도 않는다. 술도 종목 가리지 않고 잘 마시고 화가 날 때도 쾌활하게 받아넘기는 분위기 메이커 수영.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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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직업
소설가
소설을 쓰고 있는데 종결을 하게 될는지 알수없다. 그래도 다들 휴식에 젖는 시간에 난 소설을 쓸거다 나만의 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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