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바 앞에 앉아 이름도 맛도 모르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온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배경음악 삼아 쳇 베이커의 선율에 분위기를 맡기고, 당신 생각에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질척한 습도보다 구질구질해요, 제 마음이.”
“어째서요?”
“보잘것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착각하니까요.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움받는 게 편하겠어요.”
나라는 모래가 바스러져 무너진 자리로 당신이란 파도가 들이친다는 걸 풍경처럼 멀찍이서 그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단정한 모습을 잃고, 흐트러져 훌쩍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이 넌지시 물었다. 아마도 오늘 중 가장 온화한 목소리로.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분명한 대답을 찾느라 몇 날 며칠을 사랑 생각만 했는데 여전히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내가 내 마음조차 모른다는 게 우스웠다.
“어디까지가 사랑일까요?”
“글쎄요,
당신이 주저하는 마음에서 한 뼘 더 앞이요.”
앞이면 어디 앞을 말하는 거냐는 내 표정에 그 사람은 바를 바라보고 있던 몸의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하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순간, 모든 것이 느릿해지면서 귓가의 음악만이 속삭였다. 아마도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요’가 스쳐 지나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발걸음 너머로 봄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 흘린 한숨 틈으로 모든 의문의 의문이 되는 당신을 그렸다가, 알지 못하는 사랑에 숨을 들이켰다. 사랑이라니, 그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경하게 시간이 정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