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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24. 2021

활화산과 수백 오름들

거대 여신과 활화산의 원시인들 | 여신의 방귀와 화산 폭발(1)


| 일러두기 |
 서적·영화는 《 》, 논문·언론·그림은 < >, 법·조례는 「 」, 굿·노래는 ‘ ’로 표기하였습니다.



신화로 살펴보는 제주문명사

1부  거대 여신과 활화산의 원시인들 




제1장 여신의 방귀와 화산폭발




활화산과 수백 오름들



태초에 거대 여신 설문대할망이 잠들어 있었다.


설문대할망은 자연을 품은 풍요의 여신이었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깬 할망이 방귀를 뀌자 불꽃이 일며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방귀가 폭발하며 도처에 불바다가 일자 할망은 벌떡 일어나 흙을 퍼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할망은 큰 몸을 겨우 가린 앞치마로 흙을 쌓아 옮겼다. 옷이 헤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흙을 퍼 나르다 보니 구멍 난 치마 틈새로 흙덩이가 후두두 떨어졌는데 이 때 크고 작은 오름이 만들어졌다. 개중에 너무 뾰족한 오름은 할망이 주먹으로 툭 눌러 둥글게 패이게 되었다. 할망이 제주의 중심부에 두둑이 쌓아 올린 흙덩어리는 한라산이 되었다. 할망은 아무리 꺼도 되살아나는 활화산에 오줌을 쌌다. 오줌은 산을 적시고 넘쳐흘러 물장오리오름 분화구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생겨났고,  제주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되었다. 하루는 설문대할망이 성산읍 식산봉과 일출봉에 발을 디디고 앉아 볼일을 봤는데 그때 오줌발에 떨어져 나간 땅이 떠내려가 우도가 되었다. 할망의 거센 오줌줄기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성산과 우도 사이의 물살은 유난히 빠르다고 한다.


성산일출봉


제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가장 큰 화산섬으로서 본섬을 포함하여 8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면적은 약 1,845.88 평방킬로미터이며 인구는 67만 명을 웃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만 년 전 분출된 화산이 제주의 부속 섬과 산을 만들었다.


현재 제주도 규모의 화산섬이 형성된 때는 화산활동 제2기다. 화산활동 제3기에 중앙 화산체에서 중심분화가 진행되었고 약 10만 년 전인 제4기에 분출된 점도 높은 용암이 쌓여 1,947m 높이의 한라산과 영실기암을 형성하였다. 백록담은 약 2만 5천 년 전 화산활동 제5기에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한라산 남벽


한라산漢拏山은 산에 오르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한라산 분화구가 백록담白鹿潭이 된 까닭은 어느 사냥꾼의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하루는 한 사냥꾼이 사슴을 쫓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보니 흰 사슴을 탄 백발노인이 수천 사슴 떼를 이끌고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넋을 잃었던 사냥꾼이 정신을 차리고 무리에서 동떨어진 사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더니 노인이 흰 사슴 떼를 몰고 구름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옛날에 한라산은 영주산瀛洲山이라 불리는 신선들의 땅이라고 여겨져 제례를 지낼 때가 아니고서는 오르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다. 한라산의 우거진 숲과 가파른 암벽이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만나 만들어진 소문이었다. 또 다른 민담에서는 한 사냥꾼이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사슴피를 얻으려고 사냥을 했는데 하필 백록을 잡아 산신령께 사죄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제주 사람들이 백록을 영물로 여겼기에 만들어진 소문이었는데, 아마 당시에 흰 사슴 가죽이 귀한 진상품이었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사람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묘한 산이라고 여겨지던 한라산이 오늘날처럼 경승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산수 유람의 풍조는 한라산의 절경을 경험하리라는 염원으로 이어졌다. 그 후 제주 관원들은 물론, 유배인들 마저 백록담에 올라 풍경을 찬탄하는 유산기遊山記를 남기면서 한라산은 더욱 유명해졌다.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묘사한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함께 살펴보자.

  

일대가 비단을 펼친 듯 눈이 부시다.
… 기괴한 새와 이상한 벌레가 어우러져 험한 바위 깊숙한 곳에서 울어대는데, 늙은 산쟁이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
… 산맥은 사방으로 뻗어 범이 달리고 거북이가 웅크린 모습이다. … 둥글게 올라가고 험하게 높아지다 점점 낮아져서 마치 봉황이 날개를 퍼덕이며 아래로 내려와 웅크리어 사랑스레 병아리를 모는 것과 같으니 이는 현무의 기이함이다.
찬물이 솟는 샘의 근원은 … 비스듬히 이어져 용처럼 꿈틀꿈틀 기어가다가 허리에서 마치 왼쪽 팔로 묶인 끈을 풀려는 듯한 모습이니 청룡의 미美다. 꼬리를 끌면서 다시 돌아오려고 머리에서 오른손으로 무릎을 쓰다듬는 듯한 모습은 백호의 미美다.
… 기암과 괴석들이 쪼아 새기고 갈고 깎은 듯이 삐죽삐죽 솟아 있기도 하고 떨어져 서 있기도, 엉기어 서 있기도, 기울게 서 있기도, 짝지어 서 있기도 하며 … 이는 조물주가 정성스럽게 이뤄 놓은 것일 테다.
좋은 나무와 기이한 나무들이 푸르게 물들이고 치장하여 삼림이 빽빽한데 … 어지럽게 일어나 춤추고 절하며 줄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비가 개고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새로 만든 거울과 같고 들녘 아지랑이가 바람에 쓸리고 작은 티끌까지 모두 없어지면 만리를 훤히 내다볼 수 있는데 … 티끌세상의 시끄러움이 사라지고 세상 밖의 현오함이 온전해진다.


한라산 둘레로 크고 작은 기생화산이 펼쳐진 풍경도 장관이다. 한라산 장축에서 동시다발적 분화 활동으로 생성된 기생화산을 제주어로 '오름'이라 한다. 전설 속 설문대할망이 주먹으로 쳐서 움푹 패이게 되었다는 오름 분화구는 제주어로 '굼부리'라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된 산굼부리 분화구는 몸체에 비하여 가장 큰 분화구를 가져 앞에 '산' 자가 붙게 되었다.


산굼부리 분화구


산굼부리 분화구는 약 8,000평에 이르는 거대한 원추형 절벽이다. 아마도 설문대할망이 산굼부리를 내리칠 때 화가 크게 났던 모양이다. 산굼부리에 내린 빗물은 화구 내부의 현무암층으로 흡수되어 바다에 다다라서야 다시 솟아난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흔한데 한라산 백록담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흐르는 하천들이 대부분 건천이다. 제주 건천은 다공질多孔質 현무암의 특성에 따라 빗물이 암반으로 스며들어 해안지대에 이르러 용천수로 샘솟고 폭우 시에만 물이 흐른다.







참고문헌


李衡祥, <地理>, 《南宦博物》.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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