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신과 활화산의 원시인들 | 여신의 방귀와 화산 폭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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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할망이 오줌을 쌀 때 발을 딛었다는 성산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달리 해저에서 형성된 화산체가 수면 위로 솟아오른 수성화산체다. 8만 평이 넘는 오목한 분화구 안에는 억새나 띠와 같은 식물이 자라 있는데 출입이 금지되지 않았던 옛날에 방목지와 채초지로 사용되어 나무가 없다. 전설에서는 설문대할망이 일출봉은 구덕으로 삼고 우도는 빨랫돌로 삼아 날마다 빨래를 하였다고 한다. 분화구 능선에 솟은 수십 개의 기암은 총 99개라고 전해지는데 미처 100을 채우지 못하여 제주 산속에는 호랑이 같이 사나운 맹수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분화구를 둘러싼 기암의 형태가 올록볼록 성벽 같아서 “성산”, 그 위로 해 뜨는 풍경이 장관이라 “일출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산일출봉을 오르다 보면 가파른 탐방로 중턱에 길게 솟은 바위가 있는데 이끼가 잔뜩 껴 지나치기 쉽지만 “등경돌”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져 있다. 등경돌은 전설 속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할 때 눈이 침침해서 등잔을 걸어 놓던 등경이다.
제주 서귀포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산방산 근방에서는 약 100만 년 전에 분출된 응회암이 발견되었다. 근처 해안에는 바다로 뻗어나가는 듯한 용머리 형상의 암석이 있는데, 고려시대에 고종달이라는 사람이 중국 황제의 명을 받고 제주의 기세를 끊기 위하여 용머리와 허리 부분을 칼로 내리쳐 끊었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루고 용머리해안을 마저 소개하자면, 조선시대에 네덜란드 상선의 선원 하멜이 표류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용머리해안은 길이가 700m에 달하고 높이는 25m에서 40m가량 되는 해식애海蝕崖다. 세 개의 분화구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 겹쳐지며 형성된 암벽이 굽이치듯 펼쳐져 있어 장관이다.
제주가 본래 대륙의 일부였으나 할망의 오줌으로 인해 섬이 되었다는 전설은 제주 연륙설連陸說과도 맥을 잇는다. 제주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빌레못굴은 11,749m에 달하는 세계 최장 단일 계통 용암동굴로서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되었다. 1973년 이곳에서 순록과 황곰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순록과 황곰은 오늘날 고위도 한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동물이다. 제주 용암굴에서 이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제주가 빙하기에 한반도 및 근처 대륙과 연륙 됐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최근 들어 화석 발견 장소와 보존 상태가 뒤늦게 논란이 되어 6만 년 전으로 발표되었던 시기가 슬쩍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는 빌레못굴이 중기 구석기 유적으로 공식 분류되고 있다. 제주 연륙설을 증명하는 자료가 더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6년, 한라산 천연 보호구역에서 빙하기 유존종 고산식물을 발견하였다. <한라산 천연 보호구역 학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는 빙기에는 한반도와 중국에 연결되었다가 간빙기에 섬으로 고립되기를 반복하며 독특한 식물 분포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고도에 따라 급격히 달라지는 제주의 독특한 생태계와 다양한 생물종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척박한 화산 토질은 비록 농민들에게 오랜 세월 고군분투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섬에 산재한 수많은 용암동굴과 오름은 희귀한 화산지형을 형성하였다.
제주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UNESCO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달성한 곳이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는 과도한 중복 투표로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만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을 비롯하여 세계 자연유산 등재와 세계 지질공원 지정은 의의가 크다. 제주의 생물학적, 지질학적 가치가 국제 학계에서도 인정받은 만큼 생태 보전에 대한 책임도 가중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계획 MAB」에 따라 한라산 일대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19년에 부속 섬들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로 확대되었다. 2007년에는 국내 최초로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10년 섬 전체가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며 생태계 보고로서의 지위를 다시금 굳건히 다졌다. 비록 제주도가 설문대할망의 방귀 폭발로 만들어졌다는 우스꽝스러운 내력이 전해지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큼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으니 가히 귀한 방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김찬수, <한라산 천연 보호구역의 식물>, 《한라산 천연 보호구역 학술조사보고서》,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연구소, 2006.
사진 출처 | pixabay.com;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