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신과 활화산의 원시인들 | 신과 함께 먹고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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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어서 연중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은 다변성 일기가 특징적이다. 여름에는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태풍 및 집중호우의 빈도가 잦다.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고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 맞춰 제주에서는 농업, 목축업, 어업을 중심으로 자급자족 사회가 발달하였다.
제주의 취락은 해안 저지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투수율이 높은 현무암으로 인하여 용천수가 나지 않는 산간 취락지에서는 물통, 봉천수를 만들고 빗물을 저장해뒀다 음용수로 이용하였다. 제주에서는 화산암의 특성으로 인하여 상시 급수하는 논농사는 어려웠고 필요시에만 물을 대는 밭농사가 발달하였다. 척박한 화산토를 비옥한 농토로 개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선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다양한 해산물을 채집하여 끼니로 대신하였다. 미처 해안가에 자리 잡지 못한 고대인들은 마르지 않는 하천 인근을 찾아다니며 수렵을 하다가 마소를 방목하였다.
예로부터 사나운 짐승이 없는 제주에는 방목식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소, 돼지, 말을 도축한 뒤에는 얇게 포를 떠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에 말려두고 저장하여 먹었다. 제주에서 만든 육포는 탐라포라 불렸으며 공물과 교역물로 선정될 만큼 맛이 좋았다고 한다. 서귀포 남원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에는 방목하던 소를 잃고 산신을 만난 한 테우리의 전설이 내려온다. 테우리는 제주어로 목자牧子를 뜻한다. 람사르 습지 중 한 곳인 물영아리오름 정상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화구호가 형성되어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고여 일시적인 호수가 되지만 대부분 습지 상태를 유지한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물영아리오름 정상에는 분화구가 없었다. 하루는 어느 젊은 테우리가 방목하던 소를 잃어버려 소를 찾아 헤매며 오름에 오르다 탈진하여 쓰러졌다. 쓰러진 청년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가 평생 마셔도 마르지 않을 물을 내줄 테니 크게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하였다. 꿈에서 깬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웬일인지 몸이 젖지 않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청년의 머리 위로 벼락이 쳤고 청년은 크게 놀라 다시 기절하였다. 얼마가 지나자 정신을 차린 청년의 앞에 오름 꼭대기가 넓게 파여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후 청년은 이곳에서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며 목장을 번성하여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다. 이곳을 물의 신령이 깃들었다는 의미에서 수영악水靈岳 내지 수령산水靈山이라 부르다가 오늘날 물영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unplash.com; 제주관광공사(Visitjej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