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소연 Jun 11. 2023

어머니의 산 그리고 모성

어머니에 대한 이 글쓰기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윤리 너머의 진실, 그러니까 지상에서 사라진 한 인간의 생애에 어둠의 장막을 거둬내어 애도의 빛을 비추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해서 나의 시선은 금지된 애도를 실행한 안티고네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안티고네는 국법을 어기고 나라를 배신한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러준다. 폴뤼네이케스는 그의 또 다른 형제와 테바이의 왕위를 놓고 다투던 중 외국의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나라를 유린한 대역 죄인의 신분이었다. 그 시신을 거둔 죄목으로 체포당한 안티고네에게 국왕 크레온이 추궁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 혈족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그녀는 인간들의 법이 아닌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에 따라 자신의 오빠를 애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빠의 시신이 들판에 버려져 개떼와 새떼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아버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들판의 광인이 되고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재앙은 그녀를 이미 오래전에 죽은 목숨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녀에게 언도된 사형은 죽음으로 가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무모하고 담대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인간들의 법과 윤리가 지켜내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어떤 행동도 해도 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는 것의 존재를 법과 윤리의 기준에 따라 재단하여 그에 들어맞지 않을 때 ‘열망이 존재함’ 그 자체를 부정했을 때의 비극을 나는 염려하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열망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말해진 적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석굴 속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안티고네의 운명은 진실을 말할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자의 위기와 같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바람에 시달리는 해안들이 폭풍의 매질에 울부짖을 때와도 같이” 자신의 검은 심연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와 같이 설악산 등반에 올랐을 때,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산이 얼마나 높은 산인지, 등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 산인지 아무 정보도 없이 그녀와의 동행을 기꺼이 나선 것을 산속에서 후회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서울 지역에 있는 산처럼 산의 초입에 식당과 매점이 즐비해 있을 것이라 하며 먹을 것을 아무것도 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관광버스에서 내렸을 때 산의 초입에는 당황스러울 만치 아무것도 없었다. 휴게실도 들르지 않고 왔기에 먹을 것을 살 수 있던 타이밍도 없었다. 그래서 오전 10시부터 산을 타기 시작하여 해가 완전히 져서 산 밑으로 내려올 때까지 우리가 먹은 것이라곤 물뿐이었다. 나는 이렇게도 등산을 많이 다닌 어머니가 이 산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것에 짜증이 치밀었고,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내내 정말로 많은 짜증을 냈다. 산속에서 해가 완전히 져서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벌벌 떨며 발을 내딛으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짜증을 냈다. 해가 지면 산속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 우리의 뒤에서 나타난 등산객이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주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그 사실에 깊이 안도해서인지 어두울 때 잘만 걷던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며 나뒹굴고 말았다. 그 모습에 놀란 어머니도 나를 붙잡으려다 같이 넘어져 뒹굴었다. 산에서 내려와 갈비를 구워 먹을 때도, 호텔에서 잘지 찜질방에서 잘지 실랑이하는 가운데서도, 그다음 날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를 때에도 나의 짜증은 한결같았다. 내 핸드폰으로 어머니 사진 한 컷 찍지 않고 짜증만 냈다. 그리고 1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죽음은 영원한 미궁이 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어머니의 정신을 좀 먹게 하였는지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한 채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은 나를 영원한 미로에 가두어버렸다. 

나는 여전히 산이 두렵다. 그 산들의 깊고 울창한 나무들이, 그 나무들이 드리우는 깊은 그늘과 그 산속에 잠기는 적막한 어둠이, 그 속에서 울리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모두 내가 헤아려보지 못한 모성의 세계 같다. 산은 멧돼지, 까치, 다람쥐, 부엉이, 노루 심지어 자신의 몸을 할퀴고 가는 인간에게도 품을 내어준다. 산은 자연 그 자체이고, 내가 저항할 수 없는 모성 그 자체다. 제 몸과 연결된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숭고한 사랑. 그 모성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내가 공부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전 04화 내 딸이여, 시간을 초월하는 운명이 덮쳤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