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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an 24. 2022

클라우디아의 아빠와 바수라

산티아고, 칠레




이사를 하루 앞두고 클라우디아의 아빠가 이사를 돕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칠레까지 날아오셨다.



집 정리를 위해 아빠가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내겐 절대 잊지 못하는 스페인어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Basura

'쓰레기'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이다.


이사 전날, 볼리비아에 사는 클라우디아의 아빠가 칠레에 오셨다. 클라우디아 아빠는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클라우디아 집으로 향했다. 칠레에 온 이유가 명확한 만큼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곧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클라우디아 아빠는 사관학교 선생님처럼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펼쳤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 개의 스페인어 단어만 계속해서 외쳤다.



"Basura!" (쓰레기!)


클라우디아는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토를 달았다. 아이처럼 웅얼거리며 말하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을 처음 봐서였을까. 아빠 앞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클라우디아가 그때만큼은 나보다 7살 많은 언니가 아닌 7살짜리 어린아이 같았다. 


"아빠, 이건 버릴 수 없어요. 그건 의미가 있다구요. 저건 나중에 쓸 것 같아요."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아빠도 물러서지 않았다. "No, Basura!" (아니, 그건 쓰레기야!)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부모님이어도 그렇지, 왜 자신의 물건을 죄다 보여주고 맡기지?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나와 생각이 달라 보였다. 꽤나 만족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선 나도 클라우디아에게 묻지 않고 클라우디아 아빠에게 버릴지 말지를 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하니 금세 정리가 끝났다. 버릴 것 하나 없어 보이던 깔끔한 집에서 정말 많은 쓰레기봉투가 나왔다. 클라우디아도 행복해 보였다. 



핵토르와 오랜 시간 함께 살았던 집. 행복한 미래를 기약하며 많은 것들을 꿈꿨던 장소. 이제는 정말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클라우디아에게 그 집은 분명 많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아빠는 클라우디아에게 슬퍼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한 단어만을 외칠 뿐. "BASURA!" 


그리고 그 단어는 다른 어떤 말보다 클라우디아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클라우디아는 이전에 비해 많이 아담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혼자 살 집인 만큼 3개짜리 방도 필요가 없었다. 이사를 마치고 우리는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일을 마치고 온 디에고(당시 클라우디아의 남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클라우디아 아빠를 처음 만난 디에고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장 끝마다 "Señor"이라는 경칭을 사용했다. 


클라우디아의 아빠는 내가 만난 남미 사람들 중 가장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 난 그런 투박함이 좋았다. 


그날 클라우디아의 아빠는 디에고와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디에고가 이런저런 주제들로 대화를 터보려 했지만 - 클라우디아 아빠는 마음을 여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쩔쩔매는 디에고의 표정을 보는 게 좋았다. 당시 나는 디에고를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클라우디아는 내 친구 헥토르와 다시 만나야 하는데 - 하면서 말이다. 



클라우디아 아빠가 산티아고에 오고 며칠 뒤 나는 다시 호스텔로 짐을 옮겼다. 우수아이아에서 만났던 베베가 산티아고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떠나던 날, 이삿짐 정리로 바쁜 클라우디아와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아쉽지 않게 인사를 나눴다. 그게 되려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배낭을 메고 현관문 앞에 서 있는데 클라우디아 아빠가 다가왔다. 내 눈을 바라보고 성호를 그으며 한참 동안 기도를 해 주셨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나는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정해지는 그 순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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