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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여산 Oct 11. 2022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제주살이 스탭이 보는 4.3의 기록



우리 게하에는 ‘점심 코스’가 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부르는데,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같은 디저트를 먹는 코스를 뜻한다. 점심 코스의 시작은 사장님 차를 타고 향하는 근처 단골 식당이다. 수육, 등갈비 등 매일 점심 메뉴가 바뀌는 한식집으로, 메인 메뉴뿐 아니라 깻잎 장아찌, 꼬막 무침 같은 각종 밑반찬 또한 푸짐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표선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바다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표선에 있는 롯데리아에 가기 위해서다. 갑자기 웬 롯데리아인가 싶을 수 있지만, 사장님 왈 우리나라에서 가장 뷰가 좋은 롯데리아란다. 표선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 앉아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바다의 저 먼 지평선까지 시야를 넓히면 내 눈까지 깨끗해지는 것만 같다.



그날도 스탭들과 사장님이 함께 ‘점심 코스’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의귀리에 있는 2호점 스탭들도 함께였다. 의귀리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시골이지만, 그만큼 공기가 좋아 밤에 은하수와 별똥별도 볼 수 있는 마을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어김없이 표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봄의 제주 날씨는 가히 완벽했다. 맑은 하늘과 적당한 햇살, 가끔씩 부는 바람까지. 높은 건물이 없는 드넓은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갔다.



“으아아악”



운전을 하던 사장님이 갑자기 소리쳤다.



“왜요, 왜요.”

“찻길에 고양이 시체가 완전 떡 돼있었어요.”



뒷자리에 앉은 스탭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제주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마주하는 모습들이 있다. 시골길을 여유롭게 거니는 고양이가 아닌, 차에 치여 형체를 알 수 없이 쓸려나가 버린 고양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사람처럼 눈을 감고 죽어 있는 새.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는 자연경관만큼, 어둡고 흉한 것들이 한라산 아래 곳곳에 잠들어 있다. 잘 정비해둔 산림욕장 옆에, 비석 없이 봉분으로만 가득한 무덤가처럼 말이다. 왜 이렇게 무덤이 많아, 그 때는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가곤 했다.



더위가 한 풀 꺾인 8월의 중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집 낭독회에 갔다. 서귀포 시내의 한 책방에서 열리는  ‘4.3 추념 시집 낭독회’였다. 그래도 명색이 제주살이인데, 4.3 관련 행사에는 한 번쯤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한 행사였다. 토요일의 늦은 오후, 성별도 나이대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책방의 나무 탁자에 둘러앉았다. 우리는 4.3 추념 시집에서 시를 한 편씩 골라 낭독하기로 했다. 어떤 시를 읽을지 시집을 살펴보는데 익숙한 지명이 보였다.



표선 백사장은 스스로 빗장뼈를 열게 만들죠

밀물처럼 한꺼번에 몰려와 날카롭게 박히는 건 바람만이 아닙니다

아가미 없는 사람들이 떼로 가라앉은 곳이라 그럴까요

유독 백사장의 모래는 뾰족하지요

밤새워 써 내려간 편지는 반송된 파도 같아요

남로당 제주도당 간부를 아비로 둔 아들의 편지는 결국 물고기 밥이 되었다죠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절판된 소설책에서 듣지요

다음 생엔 제비꼬리고사리로 태어나라 빌까 봐요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잖아요

(후략)


<표선 백사장에서 온 편지> , 조미경



몇십 년 전, 군인을 피해 달아나던 수많은 도민들은 표선 해수욕장으로 끌려와 총살당했다. 일주일에 걸쳐 토산리민 200여 명이 학살되기도 하고, 간간이 한두 명이 끌려 나와 총살되기도 하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표선리의 청년들은 총을 든 군인들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이웃주민을 죽창으로 찔렀다고, 책방 사장님은 설명했다.



사장님은 4.3의 대표적인 패전에 대해 언급하며 의귀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2호점이 위치한 바로 그 의귀리였다. 의귀리는 4.3 이후 대규모 마을 방화와 학살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었다. 이때 희생된 80여 구의 시신들은 의귀 초등학교 뒤편에 버려졌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맸다. 한참 뒤적거리다 남편과 닮은 한 시신을 찾았는데, 확신할 수 없어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에 남편이 나와 말했다.


“자네가 만지던 시신이 바로 나야.”







예나 지금이나, 의귀리가 그저 별이 반짝이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표선이 지금도, 과거에도 그저 해수욕장이었다면. 하얀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가 그저 파도이기만 했다면.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라보았던 백사장에서, 군인들은 총을 쏘았고 주민들은 이웃 청년이 들이대는 죽창에 찔려 죽었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이 파도소리만큼 크게 울려 퍼졌을 것이다. 지금의 표선 해수욕장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기만 해서 그 모습을 그리기가 어려웠다.



두어 달만 있어야지 생각했던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무른 까닭은, 제주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보이는 수많은 별들,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드넓은 바다와 우거진 녹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염없이 표선 바다를 바라보고, 제주의 이곳저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고. 다들 이런 방식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제주를 바라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내가 아는 겉모습 그 너머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찾아가던 관광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내 옆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지나가는 제주의 노인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사연과 역사가 있는가. 어떤 대상을 쉽게 말하기 어려워졌을 때,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이름 없이 묻힌 사람들을 기억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을 향해 기도하는 것처럼. 마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그 모습을 받아들이리라 마음먹었다.



시집 낭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  밖으로 노을이 졌다. 한라산 너머로 태양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으로 올라가 그날의 노을을 사진으로 담곤 했다. 핑크빛으로 물드는  보였던 하늘이 오늘만큼은 어딘지 핏빛 같았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칼에 맞아 죽고, 오빠가 끌려가고 엄마가 물에 빠져 죽던 . 그날의 노을도 이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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