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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여산 Oct 19. 2022

선을 넘은 고양이 정원


안녕. 나는 정원이야. 나는 원래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어떤 집 탁자 위에는 늘 밥이 가득 있더라고? 그래서 슬금슬금 가서 먹다가 사람이 오면 도망가고 그랬지.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사료를 먹을 때마다 나를 조금씩 조금씩 쓰다듬는 거야. 흥, 내가 그런 거에 넘어갈 줄 알고. 그런데 계속 받다 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네? 가끔은 츄르도 주고. 이렇게 맛있는 걸 주는 걸 보니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여기 있으면 안전해. 사람들이 다 나를 예뻐해. 나를 항상 쓰다듬고 인사해줘. 가끔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달려가면 거기에 또 껌뻑 죽더라고. 입으로 팡팡팡팡 소리를 내면서 내 엉덩이를 쳐주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위로 쭈우욱 올라가. 골골골골 소리도 나고. 순하게 생겨서는 나한테 덤비는 개도 한 마리 있긴 하지만 뭐 가끔 냥냥펀치 날려주면서 교육시키는 중이야.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여기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낮잠 자는 것도 말이야.






고등학교 때 친구가 고양이를 입양했다. 우리 집에서 고양이랑도 놀고 하루 자고 갈래? 인터넷에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즐겨보는 나에게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고 가서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낚싯줄도 열심히 흔들었다. 어, 근데 나 왜 이렇게 눈이 간지럽지? 끊임없이 코를 풀고 눈을 비볐다. 에이취. 재채기도 나고. 팔이 접히는 부분에도 두드러기처럼 뭐가 나기 시작했다.




“어, 너 지금 눈 좀 부은 것 같은데.”




친구가 말했다. 그 날 제대로 알았다. 나 고양이 알레르기 있구나. 야외에서 살짝 만지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 고양이와 함께 있거나, 고양이를 만진 손으로 내 몸 어딘가를 다시 터치했다가는 당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박 닦아야 하는 전형적인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그러한 신체적인 반응 때문인지는 몰라도 ‘개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라는 질문에 나는 항상 개를 선택했다. 사납고 까탈스러운 고양이보다는 호의적이고 애교도 많은 강아지가 더 마음이 갔다. 나중에 반려동물을 들이게 되면 개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에게 고양이는 명확한 선이 있는 동물이었다. 내가 간지럽지 않을 만큼만, 내가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만 만질 수 있고 또 좋아할 수 있었다. 선을 넘었다간 눈물이든 콧물이든 줄줄 흐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정원이를 만났다. 처음 정원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꼬질이와 다르게 우아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꽤나 길고 유연한 몸을 가진 그 길고양이는 빠져들 것 같은 초록색 눈동자에 흰 털과 주황색 무늬를 가졌다. 꼬질이는 이름 그대로 꼬질꼬질했는데 정원이는 마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처럼 깔끔했다. 귀 한쪽 끄트머리가 조금 잘려있긴 했지만 매일 구석구석 자기 몸을 핥아서인지 털에서는 윤기가 났다. 정원이는 매일 어딘가에서 나타나 마당에서 밥을 먹거나 낮잠을 잤다.




“정원이만 예뻐하면 꼬질이가 질투해요.”




겨울부터 일하고 있었던 스탭이 귀띔해줬다. 그도 그럴 것이 정원이가 높은 탁자에 올라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으면 꼬질이는 항상 멀리에서 처량한 눈으로 지켜봤다. 정원이는 그런 꼬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손길을 한껏 즐기다가 도도하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꼬질이는 담장 위의 정원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 발을 올려도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정원이를 향해 계속 헥헥거렸다. 저게 놀자는 걸까 아니면 싸우자는 걸까. 정원이와 꼬질이는 무슨 사이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지켜보던 스탭이 말했다. 그러다 정원이가 땅으로 내려오면 꼬질이는 파파박 소리를 내며 뒤쫓았다. 아, 싸우자는 건가. 그래도 정원이가 늘 더 빨라서 잡힌 적은 없다.




처음 정원이를 만졌을 때 나는 곧장 스탭 방으로 뛰어 들어가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손을 쫙 뻗은 뒤 무의식적으로라도 내 몸을 만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 손을 박박 닦았다. 그냥 마당에서 밥만 먹고 가는 깨끗한 길냥이.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은 노을이 물드는 것과 같다. 해 질 녘에 하늘이 오묘한 빛깔로 변하는 것처럼 내가 정확히 언제부터 대상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늘은 소리 없이 천천히, 그러나 선명히 물든다. 내가 정원이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랬다. 햇살에 몸을 녹이는 노란 무늬의 고양이를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 그냥 매일의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언제부턴가 나는 검은 옷이 하얀 털로 뒤덮일 때까지 정원이를 쓰다듬었다.




아침 일찍 조식 근무를 하려고 마당으로 나오면 정원이가 야옹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을 비빈다. 야옹야옹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계속 말을 건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눈을 천천히 깜빡이면서 나를 바라본다. 저 멀리 밭에서 혼자 놀고 있다가도 ‘정원아’ 부르면 야옹 하고 달려온다. 그런 하루가 반복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정원이가 엉덩이를 두들겨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를 만져도 허락해준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귀여워 보이지만 쥐 나 참새를 잡아먹기도 (…)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굳이? 근데 이제는 내가 먼저 정원이에게 말을 건다.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큼 혀가 짧아져서는 아이에게 말하듯 높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애기 어디 다녀왔어? 뭐 하고 있었어? 그럼 그 애가 나를 보고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그거면 충분한 대답 아닌가. 정원이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지만 나는 그 뜻을 알 것만 같으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 언어가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어, 쟤네들 예전보다 더 가까워졌네.”




비가 오던 날이었다. 모두 점심을 먹다 테라스로 눈을 돌렸다. 정원이와 꼬질이는 틈만 나면 둘도 없는 앙숙인 것처럼 굴더니 처마 밑에 나란히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워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개와 고양이의 조합이라니. 그 둘은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비가 그칠 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아직도 밤이 되면 꼬질이는 파바박 소리를 내며 정원이를 쫓아가고, 정원이는 꼬질이에게 예측할 수 없는 냥냥펀치를 날린다. 그래도 그 둘은 탁자의 위아래를 나누어 햇볕을 피한다. 꼬질이는 정원이를 괴롭히는 다른 길고양이가 찾아오면 자세를 낮추고 경계하며 컹컹 짖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날렵한 모습으로 끝까지 뒤쫓는다.






삶은 알 수 없는 것들의 조합이고 놀라운 것들의 조합이다. 그래서 그 알 수 없는 것들이 서로 가까워졌을 때, 과거의 내가 얼마나 함부로 단정했는지 알 수 있다. 누가 알았을까. 길고양이가 어느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눈과 비를 피하고 게스트들의 손길을 한껏 받아들일 것이라고. 서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개와 고양이가 투닥거리다가도 서로를 지켜줄 것이라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던 사람이 마당의 노란 고양이를 하염없이 쓰다듬게 될 것이라고.




나중에 나는 어떤 선을 넘게 될까. 지금은 명확해 보이는 선을 넘어 어떤 새로움을 마주하게 될까. 정원이의 골골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귤밭을 바라볼 , 나는  선을 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너머에 있는 고양이를 만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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