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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여산 Oct 13. 2022

네 이름은 꼬질꼬질해서 꼬질이

“아니 여기 오는데 강아지가 길 안내를 해주던데요?”



일한  얼마  됐을 때의 일이다. 꽃무늬 원피스에 캐리어를 끌고  여성분이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꼬질이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안내해줬단다. 나는 이런 동화 같은 일이 있나 하고 깜짝 놀라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사장님은 디너 음식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를 손질하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  되게 흔해요. 캐리어 끄는 사람 보면 여기 오는  알고 안내해줘요.”



세상에. 우리 꼬질이가 그렇게나 똑똑하다니. 꼬질이는 우리 게하에 자주 놀러 오는 강아지다. 게하에 워낙 자주 와서 게스트들은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근처에 있는 동네 할머니댁이 꼬질이의 진짜 집이다. 할머니가 부르시는 이름은 덕구. 우리들은 꼬질꼬질해서 꼬질이라고 부른다.



게스트들에게 꼬질이의 이름을 알려주면 모두들 ‘이름이   어울리네요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꼬질이는 매일 어디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지 도깨비풀이나 나뭇잎 같은  몸에 붙여온다. 온몸이 갈색 털이지만 펄럭거리는  끝자락은  까맣다. 발만 크다고 오해를 받는데 사실 그건 털이고, 몸은 털쪘다고 오해를 받지만 사실 살이다. 우리들끼리는 꼬질이가 소형견 중에서는 가장 크고, 중형견 중에서는 가장 작은 개라고 말한다. 품에 안으면 아기처럼  들어오는데, 불편할 법도 하지만 내려줄 때까지 가만히 있을 만큼 순하다.



작은 몸집과 사람에게 절대 위협적이지 않은 성격 덕에 목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꼬질이는 낮에는 할머니댁에서 - 때로는  앞의 도로 한복판에서 - 누워 자다가 오후에는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온다. 사람들에게 한껏 귀여움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디너가 끝날 시간에는 스탭들과 함께 편의점으로 산책을 간다.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문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다 함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다. 아니 사실은 얌전히 오나 싶다가 자기 혼자  다른 길로 새는 날이  많다. 본인만의 코스가  있는 모양이다.



강아지도 사람이랑 똑같다는 말을 꼬질이를 보며 자주 실감한다. 먼저 취향이 사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확실하다. 다이소 간식도 좋아하지만 고급 수제 간식에는 침을 줄줄 흘린다. 사람들이 사다 주는 비싼 장난감은 금방 싫증 내지만 어디서 주워오는 뼈다귀는 도통 놓지를 않는다. 성격은  어떤가. 지나가는 개에게는 동네가 떠나가라 짖으면서 사람에게는 으르렁 소리   내지 않는다. 목욕을 키든 털을 자르든 그저 한숨만 푹푹  뿐인 참을성이란.



가끔은 사람보다  따뜻한 위안을  작은 털뭉치로부터 느끼기도 한다. 한여름의 일이었다. 여름이니까 해가 늦게 져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늦은 밤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려는데 주위는 이미 어두웠다. 가로등이 많이 없는 제주는 해가 지면 도시보다  깜깜하다. 자주 걷는 길이라 익숙할  알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니 또 무서웠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골목길 구석에 작고 둥글둥글한 실루엣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꼬질아!”



그러자  이름 부르는  귀신 같이 알아듣는 털뭉치가 헥헥대며 달려왔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아이가 웃는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는 꼬리의 감촉이  다리에 느껴졌다. 선선한 여름밤  손에 느껴지는 강아지의 온기는 무서움을 떨쳐내기에 충분했다. 그날만큼은 꼬질이를 더 오래, 더 많이 쓰다듬었다.



“집에 가자, 꼬질아.”



우리는 함께 집으로 걸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젠 탁탁거리는 꼬질이의 발걸음 소리가 함께였다. 우리는 마치 동화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꼬질이도 그날만큼은 중간에 새지 않고 집까지 함께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헥헥대며 마당으로 뛰어드는 강아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있으랴.



공원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개를 스쳐 지나갈 , 아니면 남의  마당에 묶여있는 개를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아마 여기 이렇게 오래 있지 않았다면 꼬질이도 그냥 엽다며   쓰다듬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꼬질이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꼬질이의 발걸음 소리도 알지 못했겠지. 말도 통하지 않는 작은 생명체는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어쩌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부수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아주는 것만으로도, 만져주는 손길에 가만히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친구의 반려동물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나는 이제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을 보여주는 개언니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우리 꼬질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귀여운지 알아달라며 열변을 토한다. 지금 내 휴대폰 잠금화면은 달려오는 꼬질이고, 사진 앨범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단 한 장도 지울 수 없는 꼬질이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대해 한 편이 아닌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기르는 고양이의 얼굴로 타투를 하고, 먼저 하늘나라에 간 강아지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이유를.



나 또한 육지에 돌아가면 갈색 털의 작은 강아지를 떠올리며 눈물짓지 않을까. 함께 산책을 나서는 꼬질이의 헥헥거리는 숨소리로 제주의 평화로운 밤을 기억하고, 나를 보고 달려오곤 했던 꼬질이의 밝은 표정으로 우리 동네 골목길과 제주의 일상을 기억할 것이다. 꼬질꼬질하고 따뜻한 털뭉치와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았는지 놀라워하며. 그 작은 생명체를 만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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