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 찾아오고 나의 제주살이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5월, 엄마와 아빠가 제주도로 놀러 오신 적이 있다. 우리는 함께 노을을 보고 펜션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다. 엄마는 많이 지쳤는지 까무룩 잠들었고, 나는 아빠와 나란히 거실에 앉아 티비를 봤다. 제주에 가기 전에는 이렇게 자주 앉아있곤 했었다. 금요일 밤마다 아빠는 그냥 자기 아깝다며 거실에서 맥주를 마셨고, 나는 아빠 옆에 앉아서 함께 티비를 보거나 핸드폰을 했다. 아파트 숲에서 4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마시던 육지에서와는 다르게, 제주에서 미지근한 한라산 소주를 마신 아빠는 얼굴이 벌그스름해졌다.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푸른 밤이었다.
“제주 생활은 어떻냐?”
아빠는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묻는 질문들이, 관심을 표현하는 아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좋아요. 재미있어요.”
아빠는 나의 발령이 언제인지도 다시금 물었다. 내년 3월까지 많이 놀고, 많이 경험하고 오라는 말과 함께, 티비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직업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 생기게 돼. 아빠도 봐라, 아빠도 기계를 만지는 일을 하니까 어딜 가도 그것만 보여.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야. 네가 뭐 내년부터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은 직업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선입견이 없다고. 니가 교사다 뭐다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서 사람들도 보고, 니가 하는 경험들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해.”
아빠는 어쩌다 한 번씩, 인생 선배로서의 짬이 잔뜩 묻어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그랬다. 나는 아직 제대로 교사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면서, 육지에서든 제주에서든 학교나 아이들이 먼저 보였다. 제주에 왔다는 걸 초등학교 앞에 붙은 ‘제주 4.3 교육 주간’ 현수막을 보고 실감했으니까. 학교 크기부터 시작해서, 내 옆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중에 저 애들을 가르친다면 어떨까, 답이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빠는 이런 나의 모습을 이미 짐작하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 나는 ‘아빠 그렇게 멋진 말도 하고 완전 짱이다.’ 하며 웃었다. 그리고 토씨 하나 잊을까 봐 곧장 핸드폰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올해를 보내면서 두고두고 곱씹으리라 생각했다.
부모님과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내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매일 밤마다 디너 파티가 열린다. 저녁 시간, 게스트들은 1층 카페의 기다란 초록색 테이블에 둘러앉아 와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어색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보통 디너 음식 준비를 끝마치면 바 뒤편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날따라 게스트들이 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들려왔다.
“저는 미국에서 심리학 공부하다가 잠깐 한국 왔어요.”
“지금 프리랜서로 영상 일 하고 있어요.”
“퇴사했어요. 앞으로 무슨 일 할지 슬슬 찾아봐야죠.”
“생업으로는 펜션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
학교에서 그림 카드들로 직업을 접하는 것과 진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카드 위에 그려진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닌, 그 사람의 수많은 경험과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일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퇴사라는 말 뒤편으로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눈물이 있었을 것이며, 글을 쓰면서 펜션을 운영하려는 선택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경험이 뒷받침되었을까.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한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독창적인 외계인을 그려보려고 해도 결국 사람의 모습을 닮는 것처럼. 내가 보고 들은 것은 교직 사회에 한했다. 임용고시에 붙는 것, 그래서 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좋은 교사가 되고 그렇게 늙어가는 것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교사 말고도 참 다양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제주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나서야 실감이 났다. 아니, ‘일’이라는 말 뒤에 있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보였다. 회사를 잘 다니다가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 자기 직업에 욕심을 갖고 더 발전시켜 나가려고 하는 사람,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
무직일 때, 지금 내가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전념해야 하는 일이 없을 때,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저렇게 일할 수도 있고, 이런 길도 있구나. 그렇게 나는 내 삶이라는 시험지를 본다. 좋은 교사되기, 돈 많이 모으기 말고도 더 다양해진 선택지가 있다. 다만 이 시험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복수 정답도 가능하며, 나중에 지우고 다시 써도 된다. 몇 번이고,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