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여산 Oct 06. 2022

당신에게 1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합격자 발표는 2월의 어느 날, 정확히 오전 10시다. 가족들은 모두 집을 나갔고, 나 혼자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눈을 깜빡인다. 미색 천장의 벽지가 마치 내 머릿속처럼 멍하다. 쿵쿵대는 나의 심장소리만 귓가에 울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임용고시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며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엄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싫다. 그렇게 20여분 정도가 흘러간다. 어차피 발표가 난 직후에는 모든 임고생들이 홈페이지로 달려들어서 제대로 열리지도 않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몸을 어렵사리 일으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드디어 책상에 앉는다. 작년에도 이렇게 조용한 집에서 혼자 결과를 확인해보고 그대로 엎드려 울었었는데. 그때의 나를 측은하게 여기며 노트북을 연다. 떨리는 손으로 내 수험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그리고 짜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배가 고프면 치킨을 갈망하고, 치킨을 먹고 있으면 시원한 콜라 한 잔을 갈망하고, 콜라가 있으면 단단한 얼음이 몇 개 담긴 유리잔을 찾는다. 얼음 잔도 있다면, ‘여기 빨대만 있으면 이도 안 시리고 딱 좋을 텐데.’ 하는 식이다. 두 번째로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2021년의 내 모습도 이와 비슷했다.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날, 나는 제일 친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토해내듯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정말 약은 거 아는데, 붙더라도 제발 앞 등수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 3월부터 일하기 싫어. 떨어지는 것도 싫은데 바로 일하는 것도 너무 싫어. 나도 내가 너무 어이가 없는데. 붙더라도 제발 뒷등수. 제발 턱걸이 합격. 발령 대기 1년 제바아아알.”



초등 임용의 경우, 앞 등수부터 차례대로 발령이 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같은 해에 합격해도, 1등은 바로 다음 달부터 교사가 되어 일하지만, 꼴등의 경우 내년 3월부터 근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뒷등수였으면 좋겠다는 말은, 합격은 하되, 합격생의 신분으로 최대한 많이 놀다가 천천히 일하게 되면 좋겠다는 뜻이다.



합격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등수까지 내가 원하는 등수였으면 좋겠다니. 나를 위한 치킨과 콜라와 얼음컵과, 그에 알맞은 빨대까지 대령해달라는 심보다. 나도 이런 스스로가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만약 시험을 너무 잘 본 나머지 당장 다음 달부터 일하게 된다면,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학교로 끌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합격이 아직 믿기지도 않는데, 한 달만에 독서실에 앉아있던 임고생에서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이다. 반면 임용 합격 후 누리는 1년 간의 자유시간은 합격보다 더 짜릿한 일인 듯 보였다. 무엇인가에 쫓기지 않으며 오롯이 놀고 즐길 수 있는 1년은 직장인은 물론 학생 신분으로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시간이니까 말이다.



만약 1년 간의 자유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치듯이 얻은 1년이 아니라, 1년 뒤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게 보장된 상황이라면. 아마 각자의 나이와 상황을 막론하고 잠시나마 설레는 미소를 지은 뒤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쉰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도 있겠지.



나 또한 종종 공부하다가, 혹시나 내가 조상신의 도움과 신의 가호 아래, 합격도 하고 내년 3월에 발령 나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했다. 1년의 시간이라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휴학했을 때 못해봤던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탭살이를 할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보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어린이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공부도 할 수 있어 보였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했다. 2년 간의 수험 생활은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떨어져 표류하는 것 같았다. 아틀란티스나 신대륙처럼 내가 꿈꾸는 멋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직업을 가지고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처음 교대에 입학할 때, 나는 내가 교사가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겐 4년의 시간이 있으니, 교사가 맞는지 아닌지는 그동안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4년이 지나도 나는 아직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최소한 무슨 일이 싫은지는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내가 행복한지, 교직에 발을 내디뎌도 되는지 무엇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4학년이 되었고 임용 공부는 코 앞에 닥쳐 있었다. 그래도 일단 해보자 하고 꾸역꾸역 공부한 첫 해, 보기 좋게 1차에서 떨어졌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떨어지기까지 하다니.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했다.



전공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교사가 되고 싶다고 선명히 대답할 수 없었으면서, 나는 떠밀리듯이 다시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직접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대해봐도, 아직 나는 아이들이 어려웠고, 교사라는 직업이 어려웠다. 다시 다 엎어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준비해야 하나도 생각했지만 나는 임용에 다시 도전했다. 가장 편한 선택을 한 것이다. 교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하는 선택, 주변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택. 나는 떠밀리고 있었다.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나를 바다로 떠밀었다. 이 길로 가야 해. 지금 이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리고 나는 다시 내 방 노트북 앞. 엔터키를 누르고 손에 땀을 쥐는 몇 초가 지났다.



“으헉.”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나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긴장감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최종 합격이었다. 이 네 글자 보려고 갖은 고생 했구나. 이제야 나타난 그 글자들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했다. 좋은 일은 또 있었다. 올해가 아닌 내년 3월에 발령이 난다는 소식이었다. 진짜 조상신이 도왔나. 제가요?



상상 속에만 있던, 그 ‘오롯이 나를 위해 비어 있는 1년’이 생겼으니, 나는 이 시간을 무조건 알차고 의미 있게 채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집에서 가만히 핸드폰만 보며 내 귀한 발령 대기 기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혼자 그려만 왔던 것들을 진짜로 해 볼 차례였다. 발령이 나고 나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못했던 것. 하지만 앞으로 오랜 기간 몸담을 ‘교육’과는 관련이 적은 것.



나는 곧장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탭 자리를 찾아보았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제주도에 오래 있어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조용한 분위기여야 하고, 제주도에서도 내가 가보지 못한 서쪽이나 남쪽을 원했다. 조건에 맞는 게하의 스탭 모집 공고가 올라오자 바로 지원서를 보냈다. 그리고 3월 1일. 나와 같이 합격한 누군가는 첫 출근을 준비하고 있을 그날에,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사실 그때는 길어야 두 달이면 돌아오겠지, 생각했다. 제주에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있게 될 줄은, 마치 고향처럼 여기에 정을 붙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