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스위스, 스와질란드
드디어 첫 출장이다! 출장지는 '스와질란드*'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늘 하는 그런 관광이나 휴식을 위한 여행 말고 조금은 특별한 여행...
자연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고, 마음을 나누는 그런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 마음은 부풀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빨간 흙, 올망졸망한 자갈, 뾰족해서 상처를 내는 하얀 가시나무,
어둠이 짙게 드리운 그 하늘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서울>홍콩>요하네스버그>음바바네 이동만 3일... 총 7박 8일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첫 번째 아프리카의 기록을 조심스레 시작한다.
(*2018. 4 기준 국가 명칭이 스와질란드에서 에스와티니로 바뀌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 출장! 나에게는 첫 아프리카 여행, 첫 남반구 여행.
무엇이든 '처음'은 단 한번뿐이기에, 그 전과 영원히 같을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한 느낌이었다.
아프리카는 어떻게 갈까? 광대한 대륙이라 그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여러 항공사와 루트가 있었지만, 대체로 남쪽에 위치한 국가를 갈 때는 아프리카의 허브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약 12시간이 넘는 직항 비행기 (South African Airways/남아공항공)로 갈아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공에서 스와질란드의 수도인 음바바네 까지... 한국에서 20여 시간을 넘게 날아 도착한 스와질란드의 국제공항, 만지니 국왕 음스와티 3세 공항에는 작은 우리 비행기뿐이었다.
공항에서 숙소에서 가는 길엔 정말 잘 닦인 1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드넓은 수평선이 펼쳐졌다. 햇살이 너무 강렬했고, 낮은 하늘과 '아무것도 없는' 평원이 길 양쪽으로 끝도 없이 보일 뿐이었다. 스와질란드의 별명은 '아프리카의 스위스'다. 그만큼 깨끗한 자연과 유럽스런 지형... 이를테면 동글동글한 오름/언덕이 눈에 띄었다. 날씨는 굉장히 더웠다. 시원한 차 안에 있으면 잘 모르지만, 강한 햇볕 때문에 밖에 5분만 서있어도 땀이 나기 시작하는 한여름 날씨. 사람들은 느릿느릿 걷고 얼굴에는 여유가 넘친다.
'이게 아프리카구나!'를 처음 느꼈던 경험은 환전을 하러 시내 은행에 들렀을 때였다.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현지 통화로 환전이 필요한 달러를 건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내가 가져온 출장비가 너무 많았는지 (?) 자꾸만 더 높은 사람, 다른 사람을 불러 주겠다며 직원 3명이 왔다갔고 나를 이런저런 서류에 사인을 하게 했다. 은행에 잠깐 들르고 얼른 회의에 가봐야 했는데, 명확한 설명도 뭣도 없이 손님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참을성의 한계가 온 내가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드디어 커다란 금고뒷편에서 귀한 현지 화폐 '릴랑게니' 다발이 누런 서류봉투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 나중에 알고보니 아프리카는 위조지폐가 많아 철저한 검별과 자격확인 끝에 제한적으로 환전을 해주는데 (실제로 하루에 인당 $500만 환전을 해주기도 한다), 2015년 11월 기준 1달러가 약 14 릴랑게니. 게다가 화폐권은 200 릴랑게니가 가장 고액 화폐다. 내가 내민 2,000달러는 너무나 큰 돈이었던 것.
환전을 마치고 나오니 약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출장 첫날부터 순탄치 않구나!' 하지만 그건 내가 아직도 한국의 시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 갈 때는 '상식'이란 것은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모든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내전과 질병 등과 싸우며 힘든 과거를 (불과 얼마 전 까지) 겪어냈다. 그들에게 이 돈을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것 마냥 초조해하는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서비스 마인드니 정시약속이라느니, 우리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미는 건 그들의 입장에서는 옳지도 않고 우습다. 우리가 '옳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불필요한 것이거나 미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여행할 때 다시 한 번 배우는 것들이다.
숙소 얘기를 조금 하자면, 모잠비크 국경과 가까운 남동쪽 사파리 한가운데 위치한, 악어도 기린도 토끼도 볼 수 있다는 리조트 니젤라.스와질란드는 꽤 발달한 나라이며 여느 아프리카 국가처럼 사파리 관광산업이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관광객을 위한 리조트 중 한 군데 여서 굉장히 깨끗하고 쾌적했다. 독채로 되어있어 밤에는 굉장히 캄캄하고, 비가 심하게 오던 밤 정전이 되었을 때 로비에 연락할 전화기도 없긴 했지만, 하루종일 땀흘리고 돌아온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편안했던 숙소에서의 꿀잠과 색깔이 예쁜 도마뱀과의 우연한 만남, 무엇보다 처음 만난 아프리카 아이들의 반짝반짝한 눈동자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수줍어서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아이들이 이내 친해져서는 신기한 듯 내 (직모) 머리칼을 만져보고, 서로 안아달라고 떼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스와질란드의 공중화장실에는 질병 감염의 예방을 도와주는 도구(?)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11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인 스와질란드는 9월부터 우기였어야 하지만 맑은 하늘에 오후 기온 41도를 자랑했더랬다.
가뭄은 스와질란드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지역 전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무 건물이나 시설이 없는 너른 땅에는, 작물들이 말라 비틀어진 채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떠나기 전날 시원한 소나기를 한바탕 뿌려주는 하늘에 감사했다. 그 우박 같은 비는 잊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업무 중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현지 직원들, 어떤 상황에도 여유를 가지는 그 모습에서 오랜만에 아프리카인들 그 특유의 참소울을 느꼈다.
모두 감사한 직원들이었지만, 특히 우리가 즐겨 먹던 '젤리 베이비'를 닮은 아저씨 완딜레 때문에 1주일간의 출장이 너무나 유쾌했다. 곰돌이 모양 젤리와 비슷한, 사람 아기 모양을 닮은 젤리인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정부지원과 교육기반이 그나마 잘 갖춰진,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스와질란드에서 아프리카의 가능성은 무궁하다는 말을 실감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하는, '화장실에 가면 이런 게 있어야지,' '호텔에서 아침을 주문하면 이렇게 나와야지,' '사람이 사는 데면 전기랑 물은 있어야지' 등의 상식이 많이 흔들렸고, 무엇보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오랜만에 목격했다. 요리를 하기 위해 뒷산에 올라가 나무장작을 패서 불을 때우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다 밥을 하고... 이렇게 살면 하루가 정말 빠르게 가지 싶었다.
출장을 오기 전까진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나라였지만, 언젠가 저 나라에 대한 소식이 우리나라 뉴스에도 등장하고, 저 공항이 북적거리는 날이 올 것 같기도...
(다른 기회에 써보겠지만) 이전 직장을 퇴사하고 드디어 하게 된 꿈꿔왔던 일,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고 글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다가가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우는 기회가 주어져 출장이 정말 꿈만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가장 좋았던 부분은 아프리카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일하며 그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 현지에서 만난 직원 음두두지 아저씨와 이동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며 결국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도 지금 뿐이며 지나가는 것임을, 타이틀이나 소속에 상관없이 '나는 나'임을 재확인했다.
그 '나'라는 사람은.. 맡고 있는 업무나 목적보다는 사명감에 따라 움직이며 일련의 경험의 결과로 습득한 무형의 가치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임을.
그리고 언제나,
몸과 마음이 힘들 때에도, 상황이 어려울 때에도,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마음속 어린아이를 기억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함을.
예컨대 홍콩 경유시간 7시간 동안 편안한 와이파이가 있는 공항보다는 망설임 없이 시내로 달려 나가 야경을 즐기고 딤섬을 쑤셔 넣고 바람을 맞는 편을 택하는 '저지름 정신'을 늘 간직하자...!
24시간을 꼬박 날아 도착한 한국은 부쩍 추워져 있었다. 곧 눈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