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한파가 몰아치던 2월, 아프리카의 쑥 들어간 허리부분에 있는 가나(Ghana)에 다녀왔다.
지난번에 다녀온 시에라리온과 인접한 곳이라, 40도를 웃도는 더위는 지열과 가세하여 온몸에 땀이 흐르는 기이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아프리카, 참 덥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가나는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고 교육열도 높다. 주변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프랑스어를 널리 쓰는 것과 달리, 가나의 모국어는 영어다. 금이 많이 나고, 초콜릿 (카카오)이 유명하다. 치안도 안전한 편. 수도 아크라Accra 에는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알록달록한 패턴과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는 가나 사람들은,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스피커가 찢어질 듯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즐긴다.
거리는 발전된 모습이었다. 잘 닦인 도로, 활기찬 시장, 유럽축구 중계가 나오는 TV를 달아놓은 레스토랑... 흔히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빈곤, 내전, 혼란과 같은 단어들은 가나와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못 먹고 못 사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아마 수십년 전에 생긴 뒤 멈추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보다 되풀이하고 확정지어온 언론의 역할이 크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들여왔던 서방국가에서는 예전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낙인이 깊숙이 자리잡았으며, CNN, BBC 등 전세계인들이 즐겨보는 '뉴스'는 이슈와 갈등에 방점을 두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프리카 관련 뉴스는 내전이나 폭동 등 부정적인 내용이 거의 전부다. 치안이 좋지 않고 여러 사회적 체계가 갖춰있지 않으며, 정부부처나 공무원들의 비리도 빈번한 것이 사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다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 아프리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지연시킬 뿐이다.
참전용사를 파견했던 미국에서 오늘날까지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베트남을 '도움이 필요한 나라' 또는 '전쟁에서 회복중인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보기엔 우리의 초침 잃은 인식이 얼마나 우스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NGO 직원으로 현장에 가보면 느끼는 것 중에 하나,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많은 장족의 발전을 이룩해왔고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거다. (지금은 불안정해도, 장기적으로 아프리카에 투자하면 손해볼 것 없을 거라는 게 내 지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외부의 도움으로 또 자체적인 노력으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고, 굶지 않게 될수록 우리의 역할은 작아진다. 굶던 시대에 식량을 배분해주던 역할에서 그들이 농작물을 길러 직접 수확하고, 시장에 내다 팔아 수입을 창출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농업훈련과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역할까지 사업에 포함되었다. 수년 전 "잘가요"라는 메시지로 지역의 독립을 축하하며 떠나는 NGO의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 우후죽순 생겨난 NGO들은 공생관계이자 선의의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예전엔 하나, 둘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던 단체의 이름들이 지금은 많아진 것처럼, 다각화되고 (환경, 인권, 여아, 식수 등 더욱 많은, 세밀화된 분야에서 NGO가 생겨남) 다변화되어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미 일부는 호황기를 거치며 뒤집어진 U자모양 역성장커브를 그리게 되어, 전세계적으로 인원 감축과 조직 개편에 분주하다.
조금 더 나아가 말하자면, 기존에 NGO들이 '사업만 잘 하면' 되었다면 이제는 수많은 NGO 속에서 차별화된 장점을 부각시켜 마케팅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거다. 아니, 하다 못해 나라도 가나 노점에서 코코넛 하나만 사먹으려 해도 옆집이나 다른 곳과 비교하게 되는데, 이건 필수 불가결의 문제 아닌가.
꿈과 아이디어, 좋은 의도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에 NGO도 마찬가지로 사업계획과 예산, 전략과 마케팅에 있어서 깊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가나 출장을 통해 나부터도 그 '올드한'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무엇보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나며 '좋은 일'을 하기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변한다고 과연 이게 없어질 일일까? 아직까지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학에서 국제학을 같이 전공하고 정책 쪽에 있는 내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NGO가 닿을 수 있는 곳에는 한계가 있다고.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도 아니고 법을 바꿀 수 있는 정부도 아니지만... 영향력을 행사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가장 마지막까지! 아이들이 있는 곳에 늘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