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다.
불편했던 일도 서운했던 말도,
대부분은 마음속에만 담아둔다.
말한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싶고,
그 말을 꺼내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을 말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걸 드러내기보다
애써 무시하고 감추는 쪽을 택한다.
나도 그랬다.
예전엔 그게 배려인 줄 알았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게 하려면
내가 감정을 숨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내 마음을 보여주면
상대가 나를 불편해할까 봐.
내 감정을 털어놓으면
관계가 어긋날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삼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냥 넘기자.'
'내가 너무 예민한 거지'
'이런 걸 말하면 어색해질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상처받은 마음 위에
조용히 웃을 얼굴로 덮었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넘겼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밤중에 괜히 울컥하기도 했고,
아무 말없이 조용히 떠난 사람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기도 했다.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나는 이럴 때 좀 속상해'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더라'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관계는 계속 내 안에서만 무거워졌다.
나는 한동안
사람들과 만난 후에
집에 돌아오면 서글퍼졌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멍이 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못 본척하고
표현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몰라주었던 사람들보다
나를 지키지 못한 내가 실망스러웠다.
이제는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조금 어색해도 그래도 해본다.
"그 말이 나에게는 조금 불편했어."
"사실 그때 민망하더라."
이렇게 말해보는 연습.
상대가 당황해도 괜찮다.
어색한 공기가 흘러도 괜찮다.
내 감정에 솔직한 건
내가 잘못하는 게 아니니까.
감정을 말한다는 건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동안의 나는
상대의 말에 상처받을까 봐 말을 무서웠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무섭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인정하고 싶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서운했으면 서운한대로
그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으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지금
말하지 않던 사람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그 길은 아직 서툴고 낯설다.
조금 더디고,
가끔은 본래대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건
감정을 말하는 건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숨기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 말하는 나는 점점
나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솔직할수록
나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비로소 나다운 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