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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나는 왜 늘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을까

by 담은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며,
상대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 거슬림을 느끼지 않도록.
내 감정을 잠시 접어두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게 어른스럽고, 매력 있고, 사랑받는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말들이 입에 붙었고,
그 말들에 익숙해질수록 내 감정은 점점 작아졌다.
이게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건 그냥,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넌 진짜 배려심이 깊어. 힘들어도 티 안 내잖아. 참 어른스럽다.”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 찜찜했다.
내가 진짜 배려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감정을 보이면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고 멀어질까 봐,
그게 두려워서 숨기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상처받았을 때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거의 없다.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
내가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유난스러운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참았다.
감정도, 말도.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원래 별일 아닌 사람인 척.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쉽게 묻히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면서
속은 계속 끓었다.
어느 날은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에 터졌다.
별로 화낼 일도 아닌데, 그 말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몇 년 전.
우울증 때문에 힘들다고,
정말 어렵게 엄마에게 털어놓았던 날이 있다.
엄마는 말했다.
“나도 우울증이야. 병원 가봐.
그 정도는 누구나 겪어.”

그게 끝이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힘들다고…’
그 말은 마음속에서만 울리고,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또 울었다.
엄마의 반응보다
그 상황에서도
내 감정보다 엄마의 기분을 먼저 생각한 내가 더 슬펐다.

나는 왜 늘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을까.

어릴 적부터 그랬다.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동생이 먼저 잘못했는데도
“언니가 참아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부모가 싸우는 날엔
무섭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게
‘잘하는 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됐다.
슬퍼도, 화가 나도, 무서워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법을 익혔다.

그게 습관이 됐고,
이제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헷갈리는 날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랑받고 싶어서?
평화롭게 보이고 싶어서?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조금 서툴러도,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도,
괜찮은 척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 사실 좀 서운했어.”
“그때 나 좀 불편했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이 서툴러도
그 서툶마저 내 감정이니까.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마음을 억누르고 싶지 않다.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그 말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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