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양귀자의 『모순』를 읽었다.
사랑이란 뭘까.
결말이 조금 의외라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주인공 진진의 엄마와 쌍둥이 이모는 각기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엄마는 가난하고 술에 찌든 남자와, 이모는 돈 많고 계획적인 남자와 결혼했다.
모두가, 그리고 심지어 진진의 엄마 본인조차도 남편을 원망하고 욕하지만, 그 안엔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사랑이 있었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성적 본능에서 비롯된 사랑.
사랑했기 때문에 욕이 나왔고, 사랑했기 때문에 희생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 사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힘도 생겼다.
진진의 아빠는 객관적으로 봤을 땐 망나니지만,
그의 취중진담을 들여다보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예술병 같은 과한 사랑이긴 했지만.
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나지만, “너무 사랑해서 도망치고 싶다”라고 했었나. 좀 중2병 같기도 했고.
반면 이모는 누가 봐도 이상적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사랑은 없었다.
아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남편은 그녀의 감정보다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주지 않은 그녀를 원망하는 대사를 뿜어댔다.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녀는 결국, 남편이 설계한 도면대로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도 2007년에 출간되었지만, 여자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가족 전체가 난리를 피우는 걸 보면, 과거 여자들의 인생은 참 고달팠을 것 같다.
반면 지금은 여자들이 경제활동도 활발히 하고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다.
그런데도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참 아이러니하다.
몇십만년동안 인류역사 속에서 집을 가꾸고 아이를 키워낸 여자들의 DNA에 그러한 욕구가 각인이 되었나 보다.
나도 30대에 접어드니, 일과 결혼 그리고 출산에 대한 고민이 많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과연 믿을만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사람은 변화무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배우자가 나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때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전업주부로 있다면,
막막함은 고스란히 내 몫일 것이다.
부모님 세대를 보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이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쏠려 있었고, 그 관습은 잔재한다.
그럴 바엔 아예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더 속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이, 내가 선택해서 낳고, 내가 책임지고 키우면 되니까.
물론 판타지 소설처럼 보모와 가정부를 쓸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다시 『모순』으로 돌아가서, 진진은 결국 이모부 같은 남자와 결혼한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끌렸던 아빠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사람.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뻔하다.
진진은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이모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자살은 소설 속의 극적인 요소를 과장하기 위한 옵션이고, 현실에선 여성들이 자살까지 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놓은 자식을 바라보면서라도 꾸역꾸역,
인간극장의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이정도면 괜찮지, 하고 살아낸다.